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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병」 치유책/정운찬 서울대교수·경제학(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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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병」 치유책/정운찬 서울대교수·경제학(한국논단)

입력
1993.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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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는 강력한 경제회생책을 구상하고 있다고 들린다. 예상했던 대로B. 김영삼대통령을 만든 이들은 지난 가을부터 한국은행에 재할인율과 규제금리 인하를 꾸준히 요구하더니 마침내 금년들어 그 뜻을 관철시켰다. 그러나 구조적인 요인에 기인한 한국경제의 침체가 단순히 재할인율과 규제금리의 인하만으로 해결될 리는 없다. 따라서 새 정부가 추가적인 대책을 모색하는 것은 놀랄 일이 못된다.○경제체질개선이 우선

더구나 최근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면서 고통받는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경제회생책은 제법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것이다.

경제회생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띨진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재정확대 또는 통화량 증가를 통한 경기부양책이 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경기부양책은 금방 효과가 나타날지는 몰라도,병을 치유하기 보다는 일시적으로 은폐하고 더 나아가서는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은 이미 많이 풀렸다.

작년도의 성장률을 5%,물가상승률을 5%로 볼 때 19%의 통화량 증가는 매우 큰 것이었다.

새 정부는 경기부양 보다는 경제 체질개선에 힘써야 한다. 체질개선을 위해선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나는 인플레이션 경제로부터의 탈출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인플레이션 현상은 단지 물가문제에만 국한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고질적인 문제이다. 가정에서는 피아노,태권도,미술,영어,속셈 등 과외 인플레인션이 한창이다. 학교서도 인플레이션은 마찬가지다. 누구나 다 대학,대학원에 가려하고,모든 대학이 큰 대학이 되려한다. 입시부정과 재단비리 문제는 이러한 인플레이션 현상의 분산물일 뿐이다.

거업활동 측면에서는 규모의 경제가 잘못 인식되어 기업은 무조건 큰 것이 좋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나라 기업은 수익성 보다는 규모의 확대를 목표로 타인 자본으로 설비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에 자기자본 비율이 극히 낮다. 따라서 기업자금의 회전이 제대로 안되거나 채산성이 많지 않기라도 하면 도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합병이나 통합을 밥먹듯이 하고 사장실 비 시설,연수원 할 것 없이 모든 시설을 엄청나게 키웠다. 쉽게 이야기해서 겉멋만 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기업은 외형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내실이 없고 따라서 경쟁력이 약하다.

○금융부문 파행 막아야

알찬 경영에는 관심이 없고 규모의 확대를 통한 이익만을 누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한국적 경험속에서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인플레이션 현상은 내실보다는 외형만을 추구함으로써 경제 전체가 부풀어 오르는 거품경제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바로 한국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마모시킨 구조적 요인이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 확대 재생산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민경제의 자원배분을 담당하는 금융(은행) 부문이 파행적으로 운용된데 있다.

은행은 대출심사를 엄격히 하여 기업이 안전성과 수익성이 보장된 곳에 투자를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것은 은행이 자본주의의 발전에 기여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 은행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 그 원인은 정부의 규제에서 찾을 수도 있으나 은행이 기업의 부실채권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업이 망하는 경우에는 은행도 같이 망한다는 인식 때문에 은행은 어쩔 수 없이 부실기업에 계속 대출을 해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화폐금융 당국은 규제를 과감히 푸는 동시에 은행의 부실채권 문제를 빨리 해결해 주어야 한다.

한국에서 인플레이션 경제가 계속되는 또 다른 이유는 화폐금융 당국이 기업의 인플레이션 체질을 뒷받짐해 주는 데 있다. 우리나라는 통화를 관리하는 주체가 분명치 않다. 은행의 대출활동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통화량 변화를 챙기는 주체가 분명치 않기 때문에 돈이 방만하게 풀린다. 그리고 그것이 인플레이션 체질을 가능케 해준다.

사실 일반인의 눈으론 화폐금융 정책의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최종 책임자가 누가 되든 그 주체를 분명히하여 통화량 그리고 그것을 증감시키는 대출의 규모에 대한 최종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통화관리주체 명확히

내가 보기에는 통화량의 변화를 주시하는 파수꾼의 역할은 아무래도 중앙은행이 정부보다 잘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일은 한국은행 책임으로 하되 정부의 각 부처로부터 추천된 금융통화 운영위원들이 자금의 흐름을 잘 지켜보도록 하면 한은의 독주를 겁낼 것 없다. 이러한 조건에서 금융통화 운영위원회 의장과 한은총재는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부실채권 해결과 통화관리의 최종 책임자를 확실히 정하는 것은 인플레이션 중독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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