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성바탕 「위로부터 수술」/기득권층 고삐잡기 과제로문민시대 개막이라는 화려한 각광을 받으며 출범하는 김영삼정부는 모든 슬로건의 초점을 개혁에 맞추고 있다. 김 대통령은 지난 대선때 되풀이해서 개혁을 약속했고 취임준비의 대부분을 개혁구상에 할애했다. 김 대통령은 개혁이 시대적 명제일뿐 아니라 통치의 요체라고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수밖에 없는게 우리사회는 건국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본격적인 개혁의 기회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봉건왕조 붕괴와 주권없는 식민지시대,그리고 뒤이은 국토분단과 동족상잔 및 정통성이 결여된 정치체제의 지속 등은 우리에게 한번도 진정한 개혁의 기회를 허용하지 않았다.
여기에다가 김 대통령의 집권은 그가 야당출신이라는 점만으로도 집권세력의 상대적 교체라는 의미까지를 지니고 있다. 김 대통령이 구상하는 개혁의 모습은 정통성을 확보한 집권세력이 국민의 여망을 수용하는 형태를 띨 것으로 보인다.
우리헌정사에서는 정권이 바뀔때면 어김없이 개혁이 강조되곤 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개혁의 필요성이 그만큼 우리사회에 팽배해있다는 점을 반증해준다.
과거의 개혁추진은 정통성없는 권력이 물리력을 앞세웠거나 또는 추진세력의 자체 결함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경우는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 기초토양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는 6공 1기의 과도기 혼란을 겪으며 개혁에 대한 내구성을 갖추게 되었고 군사통치의 묵은 때를 벗겨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두텁게 형성돼있다.
김 대통령이 집권초기 에너지의 대부분을 개혁에 쏟을 것은 틀림없다. 이와관련해 6공 요직을 지낸 인사가 체험을 바탕으로한 얘기는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이 인사는 『개혁이 성공할 수 있느냐 여부는 6개월내에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
난마처럼 얽혀있는 기득권의 사슬을 깨기 위해선 단기간에 걸친 충격요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집권초기에 개혁의 고삐를 바짝 잡아놓지 않으면 개혁의지는 어느 사이에 기득의 논리에 함몰돼 버리고 말것이라는 얘기다.
김 대통령은 이미 청와대가 개혁의 산실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고 대통령직인수위 등 공조직은 물론이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개혁청사진을 마련해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권주변에서는 김 대통령이 개혁을 위한 1백 대과제를 선정,처방전까지 준비했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김 대통령의 개혁은 청와대가 입안을 하고 내각이 이를 실행에 옮기는 형태를 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위상이 현저히 강화된 감사원은 부패의 구조적 척결을 통해 개혁이 통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게 된다. 따라서 김 대통령이 추진할 개혁은 철저하게 「위로부터의 개혁」이다. 민의가 주동이되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아닌 집권세력이 추진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집권세력의 자세와 의지이다.
김 대통령은 이를 「윗물 맑기운동」이란 신조어로 거듭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통령 뿐만 아니라 주변의 자기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여권의 고위인사들은 『개혁을 위한 자리에 등용된 인사들은 어차피 악역을 맡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의든 타의든간에 많은 희생양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청와대와 민자당,그리고 안기부와 정부 각 부처 등에 대한 제도적 수술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기구와 제도에 대한 개혁 다음으로 추진될 것은 정치·경제·사회 등 국정 각 분야에 걸친 개혁정책의 시행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개혁의지를 국민의식 수준에까지 확산시키려는 많은 시도가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개혁가도에 적지않은 난관과 장애물이 놓여있는것도 사실이다. 우선 들수있는게 우리사회 기득권층이 단한번의 물갈이도 없이 30년 이상에 걸쳐 형성돼 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김 대통령이 3당 합당을 통해 집권을 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3당합당은 집권세력의 전면교체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했을뿐 아니라 정권탄생의 논공행상에 있어 기득권층의 지분 인정을 강요하고 있다. 또 우리사회가 아직 한번도 개혁의 경험을 갖고 있지 않아 개혁에 대한 생태적 거부감이 알게 모르게 두텁다는 점도 문제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확인되었듯이 안정을 원하는 세력들은 개혁에 필연적으로 수반될수밖에 없는 과도기적 진통을 자신들의 이해박탈에 연결시키고 있다.
결국 김 대통령이 이러한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느냐 여부는 우선적으로 집권세력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봐야할 것이다.<이병규기자>이병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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