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아이들에 무서운 세상이다. 자녀를 둔 부모의 애간장이 녹아 내릴 것 같다. 딸이 성폭행을 당한 부모나 아들이 범죄자가 된 부모나 눈앞이 캄캄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설마 내 자식이야 하다가,정작 끔찍한 일이 벌어진 다음의 심경은 당사자가 아니면 헤아리기 어렵다. 더군다나 피해 당사자인 10대 여학생의 고통과 절망은 어떻다고 형언조차 못할 일이다.한심하고 끔찍한 10대들이다. 버젓하게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같은 또래의 여중생을 유인해서 성폭행을 가했다. 피해자의 부모는 이를 악물고 범행현장을 끈질기게 지켜 재범을 저지르던 남학생을 붙잡았다. 잡고보니 성폭행자들의 가정환경은 대체로 반듯한 집안인 것이 더욱 놀랍다. 이럴 수가 있는가 숨이 막힌다.
모든 범죄가 그렇지만 가정파괴범은 가장 반인륜적이다. 사회의 뿌리인 가정을 순식간에 뒤엎어 버린다. 화락한 집안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그 피해가 당사자에게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파괴범은 사회의 공적으로 저주의 대상으로 삼는다.
10대의 성폭행이라고 차이가 있거나 관용과 이해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철부지라는 핑계가 통하지 않으며 그래서도 안된다. 사회치안이 무력하면 당사자나 부모와 가족이 나설 수 밖에 없다. 집념 하나로 범죄자들을 붙잡은 부모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깊이 새겨 보아야 한다.
우리는 먼저 무력치안에 거듭 항변한다. 우리네 자식들이 마음놓고 활보할 수 없는 거리와 환경이라면 치안력은 어디에 있고 무엇에 쓴다는 것일까. 부모가 결심하고 나서면 잡히는 범죄를 경찰은 예방할 능력이 그렇게 모자라는 것인가. 학교 주변의 폭력은 소문이 나고 불상사가 터져야 겨우 손을 쓰는 것인가. 뿌리 뽑겠다는 장담은 장담으로 그만인가. 분노가 실린 의문은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현실이다.
또 하나 반복되는 개탄이지만,가정과 학교에서의 성교육과 도덕성의 요구는 왜 이다지도 공허한지 답답한 노릇이다. 물론 가정과 학교교육만의 책임은 아닌줄 안다. 향락과 퇴폐에 빠진 세태,부박한 대중문화의 창궐은 오늘의 청소년에게 자극과 충동의 억제력을 잃게 하고 있음을 외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10대는 막 피어나는 세대이다. 그들은 미래의 지표이기도 하다. 내 멋대로 살아간다는 허황한 사고와 생활방식은 단호하게 잘라내야 한다. 성폭력의 추방은 사회공동의 책임으로 돌림이 마땅하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합심해서 무서운 아이들을 건강한 아이들로 키워가야 할 것이다. 가정이 밝아야 사회가 건전하다는 정설은 아무런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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