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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국무총리 내정자/“민생안정에 정책 최대역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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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국무총리 내정자/“민생안정에 정책 최대역점”

입력
1993.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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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4기… 정·관·재계 두루 거쳐『깨끗한 정부 구현과 경제회생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

김영삼 차기 대통령 정부의 초대 재상으로 22일 내정된 황인성 민자당 정책위 의장은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각오를 피력했다.

­소감은.

『신한국 건설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반드시 이뤄내야 할 중요한 시기에 행정부의 막중한 책임을 맡게돼 어깨가 무겁다』

­시정구상은.

『국민을 위하고 국가에 헌신·봉사하는 깨끗한 공직자 사회와 정부를 이룩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어려워진 경제를 되살리고 국민생활·물가의 안정을 기하는데 정책의 최대 역점을 둘 것이다』

­발탁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경제재건이라는 정부의 정책목표 달성이 가장 중요시됐을 것이다. 계층간·지역간의 갈등해소를 통해 국민 대화합을 이룩해야 한다는 차기 대통령의 뜻도 담겨있다고 본다』

­호남총리 발탁이 지역감정 해소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는가.

『일부지역보다는 국민 전체가 한마음 한뜻이 되는게 중요하다. 이제 우리 모두 민족적 비애인 지역갈등을 해소해 다가올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 나는 호남 총리로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총리로서 책무를 다할 생각이다』

­의원직은.

『그대로 갖고 정부에서 일할 것이다. 이는 김 차기 대통령의 뜻이다』

­내각구성과 관련한 복안은.

『아직 이에대해 김 차기 대통령과 구체적으로 상의할 시간이 없었다. 협의할 때가 오면 나름대로 의견을 밝히겠다』

­앞으로 당정관계는.

『새 정부는 민자당이 국민의 심판을 받아 출범시킨 것이다. 따라서 당정간에 긴밀한 협조관계가 이뤄질 것이다』

­당의 내각 참여폭이 크다는데.

『총리에게 제청권이 있으나 김 차기 대통령 나름의 인사원칙에 의해 조각이 이뤄지리라고 본다』

작은 키에 넉넉한 풍모의 황 총리 내정자는 「비정치적인 정치인」으로 불릴 만큼 소탈하고 원만한 성품을 지녔다.

14대 총선 당시 민자당의 「유이한」 호남의원(무주·진안·장수)중 한명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같은 희소성으로 14대 출범직후 당 3역에 기용됐고 뛰어난 업무능력,중후한 언행,다채로운 군·관·재계 경력으로 인해 일찌감치 중용이 예상됐었다.

육사 4기로 출발,육군 경리학교장 육본 재정국장 등 군의 경리통으로 지내오면서 그의 꼼꼼하고 수치에 밝은 일처리 솜씨는 유감없이 발휘됐다는 평가. 경리장교로서 소장까지 진급된 경우는 그가 처음이다.

5·16직후 군사정부에서 조달청장을 맡았다가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정치참여 권유를 뿌리치고 군에 복귀하는 뚝심을 보여줬다. 육본 재정국장 때는 파월 장병들의 월급 등 미국측의 재정부담 문제와 관련한 대미협상을 매끄럽게 처리해낸 일화도 있다.

22년의 군살림꾼 역할을 마친뒤 지난 68년 소장으로 예판한 황 총리 내정자는 70년 무임소장관 보좌관으로 관계에 투신,총리비서실장 전북지사 교통·농림수산부장관 등을 지냈다.

총리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는 김종필총리(현 민자당 대표)를 보좌했다. 총리 비서실장 출신 국무총리로는 그가 처음이다.

73년부터 5년3개월동안의 전북지사 재직은 역대 최장수 도백기록으로 그에게 「황총화」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 「도민들의 총화단결」을 시정구호로 내세운 그가 이리역 폭파사건처리 전·군 도로건설 군산 외항개발 계화도 간척사업 무주구천동 개발 등 굵직굵직한 사업들을 막힘없이 이뤄낸데서 얻은 애칭이다.

80년 5공 출범과 함께 민정당 참여로 정계에 입문,3개군을 묶은 무·진·장에서 당선,국회 교체위원장을 맡았다. 12대 때에는 전국구로 등원,곧바로 농림수산부장관을 지냈다.

농림수산부장관으로 있으면서 소파동을 해결하고 농어촌 부채경감 문제를 마무리지어 또 다시 성가를 높였다. 농어촌 부채경감을 확정지을 때는 서슬퍼렇던 청와대 경제수석과의 「힘겨루기」에서 이기고 자신의 안을 관철시켜 일에 관한한 「무서운 사람」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87년 퇴임후 88년에는 제2 민항 아시아나항공의 사장·회장을 맡으면서 사업가로 변신,또다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즐기는 골프의 핸디는 18수준이며 독서와 바둑도 취미. 3남1녀의 자녀는 모두 출가,분가했으며 친손자·손녀·외손녀가 각각 둘씩인 「할아버지 재상」. 부인 이애섭여사(63)는 40여년동안 총리 내정자의 내조에만 힘쓰고 있다.<신효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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