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새로 개관된 예술의 전당의 자유소극장에서 「울타리굿」 첫날 공연을 보고 사물놀이와 창과 서양악기와 성악소리에 귀가 범벅이 되어 나오는데 같은 서울 오페라극장 건물안의 오페라극장에서는 로비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오페라 「시집가는 날」의 제2막 2장 결혼식 장면의 노래가 울려나오고 있었다. 건물밖으로 나오니 건너편 음악당에서는 최현수의 바리톤 소리가 바깥까지 새어 나와 쩡쩡거렸다. 그 시간에 서울 오페라극장속의 토월극장에서는 연극 「백마강 달밤에」에 백제장군 계백을 명부로 찾아가고 있을 것이고 음악당안의 리사이틀 홀에서는 피아노 독주회가 열리고 있을 것이었다. 전관 개관한 예술의 전당이 각 공연장별로 차례로 기념공연을 열어 이날밤 최초로 전관 공연을 가진 것이다. 객석마다 만석이었으면 6천5백명의 관객이 한꺼번에 예술의 전당 지붕밑에 모인 것이 된다. 예술밖에 없는 어느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기도 하고 온나라가 예술로만 가득찬듯한 착각을 느끼게도 한다. 사실 예술의 전당 뿐일 것인가. 전국적으로 이 무렵에 모든 공연장에서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무대에 나와 수만명 관광객들의 가슴을 데우고 있을 것이다. 예술인들이 없었더라면 이 다수의 사람들이 어느 불꺼진 구석에서 한랭한 심혼을 달래고 있었겠는가. 예술은 영원히 불씨 꺼지지 않는한 겨울밤의 화로다.서울 오페라극장의 로비를 둘러싼 원형의 벽면에는 한국 오페라공연의 역사를 당시 포스터들로 전시해놓고 있었다. 하나 하나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오페라단이 공연한 작품들의 다양한 레퍼토리에 놀란다. 웬만한 오페라치고 공연 안된 것이 거의 없다. 연표를 보면 1948년이래 45년의 오페라 역사동안 2백80여편이 상연되었고 80년에는 연간평균 11편,90년대에 들어서는 매년 16편꼴이 무대에 올려졌다. 이쯤되면 오페라 전용극장이 생길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번 서울 오페라극장 개관공연의 관객호응은 어떤가. 오페라 「시집가는 날」은 2월15일의 초대공연에 이어 16일부터 20일까지의 일반공연에서 2천4백석 가운데 유료 입장객수는 매일 평균 5백50명 정도였다. 나머지는 초대권으로 좌석을 메웠다. 오페라뿐이 아니다. 7백석짜리 토월극장의 「백마강 달밤에」 연극공연은 첫날 저녁 관객이 1층만 차고 2층은 거의 비어있더니 다음날부터는 더 줄어들었다. 자유소극장의 「울타리굿」이 3백석을 어지간히 채우고 있을 뿐이다. 서울 오페라극장은 관객이 섭섭할 것이다.
그러나 새하얀 나무바닥의 풋풋한 새극장 냄새를 못맡은 관객은 그것이 그들만의 잘못일 것인가. 예술가들은 안간힘을 쓰는데 관객들이 무심해 분하다고만 할 것인가. 과연 오페라나 연극의 개관기념 첫 공연을 관객의 배신을 탓할 만큼 그 수준이 떳떳한 것이었는가.
이제는 우리의 예술가들이 자문할 차례다. 한국의 예술가들은 그동안 핑계가 많았다. 창작의 자유가 없다고 푸념했다. 정부는 지원이나 하지 왜 간섭이냐고 투덜댔다. 특히 공연예술은 충분한 시설이 없다고 투정했다. 제작비가 없다고 울었다. 그리고 찾아오지 않는 관객을 원망했다.
신작 오페라 「시집가는 날」은 국립오페라단의 공연이 있고 제작비 약 3억원은 오페라단이 소속된 국립극장의 예산외에 예술의 전당의 일부 지원이어서 돈 걱정이 없었다.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을리도 없다. 거기에 동양최고의 새 무대가 주어졌다. 남는 구실은 관객의 몰이해밖에 없다. 기념비적 극장건물의 개관공연인데도 왜 관객이 외면했을까.
걸핏하면 「열악한 조건」을 내세우던 우리의 예술은 막상 최상의 시설을 갖다 내놓고 보니 그 수준이 발각되어버린 느낌이다. 이번 개관공연은 우리 예술역량의 총력이라고 믿고 싶을 때 우울감은 더하다.
우리나라 예술은 특히 합창에 약하다. 문학,미술 등 개인기의 분야나 음악이라도 독주·독창부문에서는 세계수준의 기량을 가진 예술가들이 많다. 그러면서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하나 키우지 못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내놓을만한 공연작품을 만들어낸 것도 없다. 우리나라 예술가들은 각자 예술세계의 독자성이란 것으로 담을 높이 쌓고 자기 개인의 명리에만 안주하지 않았던가. 남의 예술을 질시하여 훼욕하는 협량은 없었던가. 예술계의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나라 전체의 예술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용상의 노력을 한 적이 있었던가.
예술가의 재능은 특출한 것이다. 그래서 특권을 주장하고 특혜를 기대한다. 예술의 전당은 예술인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특혜다. 이제 책임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술은 예술가 혼자 흥겨운 것이 아니라 관객도 흥겨워야하는 것이다. 예술가의 역할은 관객의 배를 부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배부른 관객을 취하게 하는 것이다. 배부른뒤 취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건물 덩실한 예술의 전당을 보고 겁이 더럭 나지 않는 사람은 예술가가 아니다. 남의 집보듯 해서는 안된다. 그 안에 좋은 작품을 채우고 그래서 관객을 가득 채워야할 사람은 남도 아니요 정부도 아니요 예술가 자신들이다. 무대예술 뿐이겠는가. 모든 분야의 예술가들이 자기 위치를 자성할 기회다.<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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