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24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제3당으로 등장했던 통일국민당이 11개월만에 원내 교섭단체 자격을 상실,사실상 붕괴되고 말았다. 많을 때에는 37명씩이나 의원들을 거느렸던 국민당이었지만 정주영 정몽준 두 부자의원을 비롯한 소속의원들의 잇단 탈당에 이어 20일에는 7명이 집단 이탈함으로써 의석은 이제 17석이 되었다. 원내 교섭단체 구성에 필요한 20석에도 미달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앞으로도 탈당자가 더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맞는다면 의원 몇명만의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운명이다.대기업이 정치에 직접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강행되었던 재벌정당은 불과 1년만에 자멸하고 있는 모습이다. 혹시 정치에 뜻을 둔 다른 재벌이 있다면 좋은 경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당의 몰락이 가져다준 다른 교훈의 하나는 돈으로 정치를 좌지우지하겠다는 생각을 누구든지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거대한 기업조직과 막강한 인력 그리고 막대한 자금으로 처음에는 바람을 일으켰던게 사실이지만 그것은 일시적이었을 뿐 국민 대다수는 결국 그런 정당을 거부하고 만 것이다.
국민당 의원들의 연쇄 집단이탈을 보면서 눈앞의 사리사욕에 끌려 이라왔다 저리갔다 변신을 너무나 쉽게 결정하는 철새 정치인들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에 새삼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작년 14대 국회의원 총선과 대통령선거를 전후해서 이당 저당을 어지럽게 들락거린 정치인들이 유난히도 많았다. 그것은 이 시대가 그만큼 격동기였다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소신없는 정치인·일관성없는 선량이 아직도 적지않은 현실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그런 작태의 장본인들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선거를 통해 엄정하게 심판해야 할 것이다.
국민당의 전락으로 새로이 걱정되는 것은 앞으로의 정국운영이다. 3당체제에서 양당체제로 바뀌었기때문에 제3의 완충역이 빠지으로써 대립·대결의 정치가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지금 국민당을 뛰쳐나간 의원들은 독자적으로 그들끼리 행동노선을 설정하기 보다는 대부분이 민자당이나 민주당으로 들어갈 공산이 크다. 그래서 여야가 서로 자기 당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신경전을 알게 모르게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탈당의원들중에는 평소의 성향으로 미뤄 야당보다 여당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보아 여당의 비대화와 이에 따라 독주를 걱정하는 소리도 있다.
13대 국회가 당초 4당체제였으나 3당 합당으로 양당제가 된뒤 얼마나 시끄러웠던던가를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사사건건 대립과 대결로 대화는 온데간데 없고 기성 정치권이 극도의 불신에서 허덕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틈바구니를 이용해서 원내에 진출한 것이 바로 국민당이었던 것이다.
이제 시대도 문민정치시대로 바뀌고 있으므로 과거와 같은 파행정국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대립·대결의 정치가 재현되지 않도록 여야가 다같이 유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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