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지 풍토 뚫고 “화제·선정성 공세”진지하고 건조한 독일 매스컴에 압축된 뉴스와 흥미제공을 앞세운 새로운 대중매체들이 잇달아 등장,미디어 혁명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영미식 「대중저널리즘」이 사변적인 독일사회에서 우위를 차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많아 귀추가 주목된다.
○52번째의 도전자
독일의 신문방송은 대체로 재미가 별로 없다. 권위지들은 뉴스보도와 해설을 겸한 장문의 기사들로 지면을 채운다. 흔히 1면에는 사진도 없이 사설이 오른쪽 전단을 차지한다. 독일 특유의 문화적 유산과 전후 언론의 계도기능 강조에 따라 도덕적·철학적 면모마저 띠고 있다. 기자들도 박사들이 많고 특종이나 폭로대신 학문적 수준의 심층분석에 치중한다.
이 때문에 외국 통신사의 독일지국들은 영어기사를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아예 화제성 기사나 선정적 부분은 잘라낸다. 가판위주 대중신문들은 오락성이나 판매부수에서 영국 등의 황색신문들에 비교가 안된다.
방송사도 비슷하다. 오락중심의 민영 TV들은 유치한 단계이고 공영 TV들은 뉴스해설·논평·다큐멘터리·시사토크쇼·문화프로 등에 집중한다. 뉴스보도도 선정성은 커녕 「근엄하다」는 평판이다.
이같은 독일 매스컴 체질에 대한 「혁명적 도전」은 TV에서부터 시작됐다. 도전의 선두주자는 지난달 방송을 시작한 뉴스중심의 NTV이다. 베를린에 본부를 둔 NTV는 30분마다 뉴스보도를 하는 독일판 CNN으로,자본도 미 CNN과 타임워너사가 절반을 갖고 있다.
2월초 방송을 시작한 두번째 뉴스 중심채널 VOX TV는 독일 출판재벌 베르넬스만과 권위지 쥐드 도이체차이퉁이 합작,뉴스보도외에 문화예술프로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여기에 유럽공동의 뉴스채널 유러뉴스(Euronews)가 2월초 방송을 시작했고,타임워너 터너브 로드캐스팅 캐피틀시터즈ABC 등 미국 매스컴 자본들이 스포츠 음악 만화 영화 등의 전문 TV채널로 독일 매스컴시장을 공략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인쇄매채쪽에서는 독보적 존재인 시사주간지 슈피겔과 주간신문 디 차이트에 「미국형」 도전자들이 등장했다.
슈피겔은 독일 언론중 특이하게 미국의 타임지를 모델로 출발했지만,국내외 전분야에 걸친 발군의 폭로보도에 심층분석을 더해 독특한 권위를 갖고 있다.
슈피겔은 기사의 양부터가 2백50여쪽으로 압축된 뉴스와 화제성 피처기사에 치중하는 타임 뉴스위크 등의 두배가 넘는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독일 정치인들은 매주 월요일 슈피겔을 보고 지적받은 정치인은 방어에,지적을 면한 정치인은 공격으로 1주일을 보낸뒤 다음주 슈피겔을 기다린다』는 말로 상징된다. 그동안 51차례 경쟁 시사주간지가 이 권위에 도전했으나,모두 단명으로 사라졌다.
지난달 52번째 도전장을 낸 포커스지는 타임스지 포맷에 뉴스위크의 흥미성 피처물을 전재하는 등 미국식 대중저널리즘을 표방했다. 독자층,특히 젊은 식자층의 기호변화에 따라 단순 명쾌한 뉴스분석 등으로 슈피겔의 아성을 허물겠다는 야심이다.
주간신문 디 차이트에 대한 도전은 18일 컬러판 「디 보헤(Die Woche)」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디 차이트는 영미 언론과 극단적 대조를 이루는 가장 고답적인 신문이다. 슈미트 전 총리가 공동 발행인인 이 신문은 컬러나 흥미기사를 배제한채 비판적 정론과 도덕적 결론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데도 발행부수 50만으로 독일 사회의 지성과 양식을 대표한다.
○아직은 입지좁아
여기에 도전한 컬러판 「디보헤」는 포커스지와 마찬가지로 고답적인 디 차이트에 접근하기를 꺼리는 식자층을 겨냥하고 있다.
이같은 독일 매스컴의 현상변경 움직임에는 독일의 국제적 비중향상,다국적 미디어 기업의 영역확장,독일언론의 뉴스개념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저널리즘이 독일 언론의 전통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방송의 경우 기본적으로 독일인들의 TV 시청시간이 미국이나 다른 유럽국가의 절반도 되지 않는 「독서형 사회」이고,『TV를 믿지 않는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이 때문에 독일 공영 TV는 지난 가을까지 아침방송 자체가 없었다. 이같은 장벽때문에 VOX TV의 경우 첫 5년간 5억마르크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인쇄매체의 경우에도 사변적,논쟁적인 독일인의 특성이 바뀌지 않는한 대중저널리즘의 입지는 좁다는 분석이다. 포커스지 등 새로운 도전자들이 이미 『무게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서 이같은 분석의 타당성을 엿볼 수 있다.<베를린=강병태특파원>베를린=강병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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