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기자재는 유용한 목적으로 사용하면 문명이기가 되지만 잘못된 목적으로 악용하면 범죄도구가 되기도 한다.이같은 이중성 때문에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기자재의 사용은 그것이 잘못된 용도로 악용되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사전 예방조치가 철저하고도 충분해야 된다.
어느 대입 3수생이 저지른 것으로 판명된 국내 전산망 이용 금융기관 휴면예금 인출기도 사건은 컴퓨터 전산망을 이용한 대형 완전범죄의 가능성과 함께 이같은 대형 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방비 상태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해주고 있다.
컴퓨터의 대중화와 함께 컴퓨터를 이용한 범죄행위는 최근 빈번하게 발생해왔다. 크게 물의를 빚고 있는 광운대의 입시부정도 일종의 컴퓨터 범죄라 할 수 있다. 대체로 이제까지의 컴퓨터 범죄는 부정자료의 입력이나 단말기 조작 등 비교적 단순한 수법의 범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의 금융기관 휴면예금 인출기도는 전자사서함을 이용하여 국가기관의 전산망에 침투하고 비밀번호(패스워드)까지도 바꿀 정도로 수법이 전문적이고 교묘했다는 점에서 이제까지의 단순 컴퓨터 범죄와는 전혀 다르다.
기밀유지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국가기관 전산망 단말기의 비밀번호가 노출되고 손쉽게 변경된 것은 금고열쇠가 송두리째 외부 침입자의 손에 넘어가 멋대로 변조된 것이나 다름없다. 금고안에 보관중이던 중요기밀이 새나가기 일보전이었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충격적인 내용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컴퓨터를 독학한 고졸 3수생이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컴퓨터의 천재라고 하더라도 독학한 3수생의 원격조작으로 비밀번호가 노출되고 변경된 것은 국내 전산망의 안전무방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전산망의 안전이 이래가지고서는 수법이 갈수록 전문화되고 교묘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컴퓨터 범죄를 예방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국가기밀마저 유지할 방도가 없어짐으로써 전산망과 컴퓨터는 오히려 「위험한 기기」로 전락하게 된다.
국내 전산망의 안전무방비상태는 평소 첨단과학기술 도입과정에서 충분한 대비책을 세우는데 게을렀기 때문이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전산망 구축과 컴퓨터 도입 등은 편익과 활용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역기능의 최소화,악이용의 방지를 함께 고려했어야만 하는 것이다. 최근의 항공관제 혼선사고와 증권전산망의 잇단 마비상태도 치명적일 수 있는 컴퓨터 사고에 대한 사전 대비책이 외면된데서 빚어진 사고였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 정보화시대 진입의 성패를 가름하는 컴퓨터 사용에 있어서 그것을 이용한 범죄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관계법규의 재정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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