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실상 심층추적/집 한채 지으며 42곳 “인사”/허가서 준공검사까지 「봉투거래」 고질/아파트 공사장 월례비 “1억대”조그만 단독주택이라도 한채 지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과정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않은 「끔찍한 악몽」이라고 말한다.
건축허가를 처음 구청에 접수시키고 공사가 끝나 준공검사를 받을 때까지 건축주는 무슨 큰 죄라도 진듯이 온갖 곳으로부터 시비를 당하고 여기저기 봉투를 돌리며 굽신거리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집 한채를 지으면 반체제가 된다』는 말이 결코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만큼 건축부조리는 「중증중에서도 중증」의 부조리이다.
『처음에 건축사가 건축허가에 50만원 이상은 들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서류상에 하자가 없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버텼지요』
지난달 「천신만고」의 고생끝에 3층짜리 단독주택을 지어 입주한 C모씨(52)는 건축부조리가 얼마나 뿌리깊고 심한지를 뼈속깊이 실감했다고 털어놨다. 처음부터 급행료를 거부한 C씨의 건축허가 서류는 건축허가 처리기한인 1주일을 정확히 채우고 반려했다. 한번은 도면이 잘못됐다,또 한번은 첨부서류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한달간 허가를 내주지 않아 결국 건축사말대로 「인사」를 하고나니 2일만에 건축허가가 났다.
이제는 됐다싶어 지하터파기를 시작하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교통경찰이 찾아와 포클레인이 차선을 위반했다며 딱지를 뗐다. 역시 『인사를 안했기 때문』이라는 건축업자의 말에 따라 파출소와 교통초소·관할경찰서 담당에게 매달 3만∼5만원씩을 상납하고 동사무소에도 10만원씩을 주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퍼낸 흙을 난지도로 갖다 버리기 위해 지나치는 관할경찰서 3곳에도 따로 인사를 하고 이웃사촌인 옆집과 뒷집 등에도 선물을 돌려야 조용했다. 어느덧 누구보다 인사성이 밝아진 C씨는 중간검사를 나온 구청공무원에게 10만원을,공사가 끝나자 소방검사를 받기 위해 30만원,마지막 준공검사 때는 단위를 더 한층 올려 1백만원씩을 구청과 소방서에 돌렸다.
C씨가 이런 식으로 돈봉투와 선물을 돌려야했던 곳은 모두 42곳. 그러나 6개월이면 충분하리라던 공사기간은 8개월로 늘었고 공사비도 당초 예상했던 1억원을 훨씬 초과한 1억3천만원이나 소요됐다.
올해로 15년째 건축일을 하고 있는 건축업자 K씨(42)는 『건축허가나 소방검사·준공검사 때 주는 돈은 건물규모에 따라 거의 공식화돼있다. 금액이 많으면 관련 공무원들이 그만큼 덜 찾아오고 적게 주면 자주 찾아오기 때문에 총액은 대개 비슷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건축허가는 구청앞에 밀집한 설계사무소에 설계와 건축허가까지 한꺼번에 맡기는게 일반적인데 이들은 평소 해당구청 건축과 직원들과 좋은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금액을 놓고 실랑이하는 일은 없다는게 K씨의 말이다.
건축행정의 부조리는 소규모 주택이나 일반건물보다 몇백·몇천가구의 아파트를 짓는 대형사업에 더욱 관행화돼 있다.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진행해야 자금회수에 유리하고 공사가 늦어지면 입주날짜를 못지켜 더 큰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담당 공무원의 눈에 한번 벗어나면 다음 사업때 힘들어지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는 사업이더라도 정기적으로 인사를 하는게 공식화돼 있다.
그래서 유명 주택건설업체에서는 회사안에 인허가 전담부서를 두고 전직 공무원 출신의 담당 임원까지 있을 정도다. 또 최근 급성장한 중소 주택건설업체인 N주택의 경우 사장이 직접 나서 인허가를 처리하면서 관례적 액수보다 몇배로 뿌리 업체간에 문제가 된 일도 있었다.
건설회사에 10년째 입허가 담당업무를 맡고 있는 L차장(39)은 아파트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입지 심의때 1백만∼2백만원 ▲건축심의·사업승인때 1천만∼2천만원 ▲공급 승인때 1백만원 ▲준공검사때 가구당 1만∼2만원 정도는 거의 공식화된 최소비용이라고 말했다.
전남지역에서 아파트건설을 하고 있는 모건설업체는 사업승인을 받기 위해 허가권을 쥐고 있는 시청 주택과 등 관련 7개 부서에 2천만원을 뿌려야 했다. 이중 건축허가와 관련된 비용은 설계업자가 맡도록 배당했다.
일부 공무원은 아예 예금통장은 온라인번호를 알려주며 필요한 액수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건설업체가 직접 사업주체가 되는 자체 사업외에 주택공사나 지방자치단체가 시공하는 공사에서도 부조리는 상식처럼 굳어져 있다. 20여년째 건설업체에서 일해온 L씨(55)의 말. 『공공기관이 서민용 아파트를 지을 때는 대개 5백∼7백가구 단위로 건설업체에 시공을 맡기는데 이런 경우 인허가처리비가 들지않는대신 착공에서 준공 때까지 현장감독에게 매달 2백만∼5백만원씩의 월례비를 상납해야 한다. 15층짜리 아파트의 경우 2년정도 걸리므로 공사현장에서 지출되는 월례비만 1억원에 이른다.
월례비가 적을 경우 감독이 「자재가 불량하고 규격에 안맞는다」는 등 갖가지 트집을 잡고 까다롭게 굴기 때문에 수주시 공사금액의 몇%를 상납비로 따로 책정해 두는게 현실이다』
심지어 정부가 앞장서 건설을 독려한 신도시아파트에서도 동시에 아파트를 분양하는 5∼10개 건설업체들중 간사업체가 업체당 50∼1백만원씩의 돈을 거둬 관계기관에 상납하는 것은 잘 알려진 비밀이다.
그러나 이처럼 부조리가 만연돼있으나 실제 적발되는 사례는 구년일모격. 지난해 7월 수원지검에 무더기로 구속된 경기 시흥시 개발국장·건축과장 등 건축관련 부서 공무원들은 진입로가 확보되지 않은 아파트에 분양승인을 내주면서 건설업체로부터 1천만원을 받는 등 9급에서 부시장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수억원대의 처리비를 상납 받아온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건축행정 부조리의 심각성은 단순히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는다는 사실에 그치지 않고 그 피해가 일반시민들에 돌아간다는데 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청주 우암아파트 붕괴사고나 인천 한국아파트 식수오염사건은 건축업자와 관계 공무원들이 별다른 죄의식 없이 자행하는 건축부조리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박정태기자>박정태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