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고를 비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40대의 독신녀,기구한 「여자의 일생」이었다. 그녀는 일찍 10대에 가정환경 이성문제로 시달리다 자살을 기도한 일이 있다. 국민학교조차 못나온 까막눈 신세를 한탄하다 2년전에 혼자 한글을 깨치기도 했다. 그녀는 육신을 팔아 목숨을 잇고 생계를 홀로 꾸려나갔다. 위안부생활,미제물건 장사를 했다니 여자의 일생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그러나 육신은 흐느적거렸어도 마음은 하늘처럼 맑고 넓었다. 그렇게 험한 세월을 살면서 알뜰하게 모아온 1억4천만여만원의 재산을 장학사업에 쓰라는 유서를 남기고 이 세상을 하직한 것이다. 그녀는 돈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알리고 숨졌다. 부정입학에 1억원을 척척 내던지고 환락을 위해 화끈하게 뭉텅이 돈을 뿌리는 오렌지족같이 「내돈 내 마음대로」 쓰는 어지러운 세태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돈의 값어치는 우선 출처가 분명해야 마땅하다. 일을 해서 번 재산만이 정당성을 인정 받는다. 다음으로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쓸데에 꼭 써야 가치가 있고 자취를 남기게 된다. 방탕과 호사의 뒤끝은 허망 뿐이다. 내 돈이라고 내 마음대로 쓰면 화를 자초하게 마련이다. 어느 「장군의 아내」가 입시부정에 2억이나 내놓고 망신과 구설수를 스스로 불러들였다. 이처럼 돈은 쓰기에 따라 약도 되고 독도 되는 것이다. ◆돈에도 예절이 있다. 예는 원래 사람의 욕망을 조절하며 사양한다는 정신에서 나왔다고 한다. 따라서 사양하는 마음이 예의 시초라고 하였다.(사양지심 예지단야). 이것을 행동으로 규제한 것이 의식이나 예절 또는 예의라는 여러가지의 형식적 규제이다. 그러므로 욕망의 조절과 사랑의 베품이 곧 돈의 예절이라 해도 무방하다. ◆쉽게 얻은 돈보다 어렵게 번 돈이 귀중함은 당연하기만 하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라는 옛말도 생각난다. 우리 사회는 「돈의 예절」을 너무 심하게 무시한다. 천민자본주의라는 고상한 언어를 동원할 필요도 없다. 향기를 풍기는 돈과 독기를 뿜는 돈과의 차이는 엄청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