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에 목매기 “교육 궤도이탈”/내신등급 「봉투부피」 따라 오락가락/불법 비밀·고액과외 공공연 성행도/“돈 있어야 상아탑 입장권… 「빗나간 관행」 대수술 시급광운대 입시부정사건으로 경찰에서 조사받던 어느 주부는 『남편의 사회적 체면과 집안의 체면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자녀를 대학에 보내고야 말겠다는 빗나간 모정은 우리나라의 사회풍토와 교육현실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도덕적 불감증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올해 전기대 입시에서만 학력고사 성적 3백점이상의 고득점자가 3만명이나 탈락했다.
이들이 제도상의 맹점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 못들어가고 후기대를 택하거나 재수를 하는 마당에 부정한 무리들은 검은 돈으로 상아탑 「입장권」을 산 것이다. 현직 교감은 물론 교사들이 입시브로커로 전락,대다수 선량한 교직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으며 학생들은 이 같은 비교육적인 현실을 냉소하고 있다.
그렇지않아도 94학년도부터 전면 개편되는 대입제도와 제6차 교육과정 적용(96년) 등을 앞두고 전환기를 맞고 있던 고교교육 현장에 또다시 먹구름이 덮인 것이다. 입시경쟁의 살벌한 전쟁터로 변해버린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은 단편적인 지식만을 전수받고 있어 인격함양을 위한 전인교육은 공허한 교육구호에 불과할 뿐이다.
돈이면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고교교육을 더욱 황폐화시키고 있다.
일부 교사와 학부모간에는 진지한 대화보다도 돈봉투가 우선시되고 불법고액과외 등이 계층간 위화감 조성을 부채질하고 있다.
내신등급을 둘러싼 잡음이 심심치않게 들려오는가하면 각종 명목의 기부금 찬조금이 너무 많다보니 교육부가 잡부금 징수 금지조치까지 내려야하는 곳이 오늘날 한국고교의 현주소다.
94학년도 대입시제도만 해도 고교교육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만든다.
학력고사대신 시행하는 대학 수학능력시험의 경우 일선교사와 학생들이 시험의 개념조차 정확히 파악하지못해 어떻게 가르치고 학습해야하는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대학별로 실시하는 본고사는 입시 주요과목 위주의 시험이 되지않게 하겠다는 교육부의 방침과 달리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들이 국어 영어 수학을 시험과목으로 채택,수험생들에게 이중부담을 안겨주게 됐다.
이에따라 고교현장에서는 벌써부터 특정대학반과 우열반을 편성하는가하면 파행적으로 교과를 운영하기도 한다.
현행 30%에서 40%로 확대반영되는 고교 내신성적의 경우 학업성적과 출석상황뿐 아니라 특별활동과 행동발달사항,봉사활동도 성적으로 평가됨에 따라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교육부 등 교육당국은 입시철마다 빗발치는 여론을 의식,미봉책에 불과한 교육개선안을 내놓기 바쁘고 선거때만 되면 정치인들이 실현가능성 없는 교육공약을 남발하고 있는 것도 고등학교를 포함한 한국교육을 그르치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교육비가 공교육비를 능가하는 우리나라 교육재정의 뒤틀어진 구조를 보면 교육위기를 실감할 수 있다.
90년 한국교육개발연구원이 조사한 우리나라 사교육비는 9조4천2백71억원으로 8조6천9백72억원에 불과한 공교육비를 무려 7천2백99억원이나 초과하고 있다.
공교육비와 사교육비를 합한 우리나라 교육비의 총액은 GNP의 13.1%에 달해 인구와 경제규모가 비슷한 다른나라에 비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사교육비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커 교육발전을 위한 교육비의 효율적인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다.
오히려 10조원으로 추정되는 엄청난 사교육비는 교육계의 지하경제로 흘러들어 온갖 부정을 낳고있다.
학교시설은 몇십년전에 비해 나아진 것이 별로 없으나 이른바 입시산업은 호황을 누리며 번창하고 있다.
입시지상주의 풍토가 파놓은 교육계의 돈고랑은 학교교육을 혼탁하게 만든다. 10억원 이상의 교과서시장을 두고 출판사와 학교측의 뒷돈거래가 성행하는가하면 대규모 사설입시학원이 독점하고 있는 대입 모의고사 시장규모만 해도 연간 2백억원에 달하고 있다.
학부모와 수험생들이 학교시험보다 사설입시학원의 모의고사를 더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골목마다 들어서 있는 입시학원과 비밀고액과외 시장규모는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공교육비를 압도하는 사교육비는 교육의 기회를 상대적으로 좁혀 계층간 갈등과 위화감을 야기시키는 등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건국후 역대정권은 계속해서 상급학교의 문턱을 낮추는 이른바 교육 대중화정책을 추진해왔지만 이제는 『돈 없으면 대학에 갈 수 없다』는 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이같은 상황을 비꼬아 진보적인 교육학자들은 『우리나라의 교육은 사회불평등구조를 확대재생산하는 역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때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신분상승의 통로기능을 해왔던 교육이 이제는 가진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서울대 김신일교수(교육학)는 『고교교육이 이 모양이 된 것은 입시제도 등 여건보다는 고교교육 담당자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팽개친채 본질구현을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모든 사회분야가 다 썩어도 교육자만은 청렴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무너진지 오래고 「기회와 연줄만 있으면 적당히 타협해야 한다」는 인식이 일부 교사사회에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고교교육계가 이번 대입부정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문용린교수(교육학)는 『고교사회에서 「어렵고 힘들지만 고귀한 길을 함께 걷는다」는 동지의식 등 교사문화가 사라지고 있다』고 전제,『교사와 학생,학부모간의 은밀한 만남이 늘어갈뿐 교사 상호간에도 커뮤티케이션이 없어져 교육현실을 더욱 삭막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상대적으로 열등화된 고교를 되살리고 교육비리와 부정의 소지를 없애는 방안으로 재정상태,수업내역 등의 과감한 공개를 제안했다.
재단이 빚더미에 허덕이다 이사장이 해외로 뺑소니치는 고교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고교교육이 정상화되려면 입시위주의 암기식교육을 조화로운 전인교육으로 바꿔야하며 고교평준화 정책 등에 일대 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대통령 직속기구인 교육정책자문회의가 지난해 12월 만 18세이상 남녀 5천1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들이 교육을 보는 시각과 문제점 등을 쉽게 알 수 있다.
응답자들의 60.1%는 입시위주의 교육이 가장 큰 병폐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왜곡된 교육관과 사회풍토(12.5%) ▲열악한 교육여건(12.1%) ▲부적합한 교육내용과 방법(6.6%) ▲권위주의적 교육행정(5.6%) ▲미흡한 교사자질(3.2%) 등의 순으로 개선방향을 제시했다.
지난 74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고교평준화 정책의 경우 응답자의 45.6%가 이 제도를 폐지하고 과거와 같은 경쟁입시 부활을 주장했다.
바람직한 입시제도에 대해서는 45.9%가 출제와 전형 모두를 대학에 일임해야 한다는 의견이었으며 33.0%는 국가에서 출제하고 대학에서 전형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학생이 고발하는 「교육오염」 현장/「뒷문입학생」 사실 안숨기고 되레 “돈자랑”/일부 교사는 “나에게 과외시켜라” 권유도
전·현직 교사들이 관련된 대학입시 대리시험과 학교측의 부정입학 등으로 말썽을 빚고 있는 대일외국어고는 고교교육 현장이 황폐차원을 넘어 얼마나 오염·부패돼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의 고교교육은 획일화,지식위주의 주입식 수업 등 교육내용면에서 개선해야 할 과제외에 오염·부패를 불식해야 할 과제까지 안고있는 셈이다.
대일외국어고 남녀졸업생 2명은 교육계의 병폐가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모교의 비리실상을 한국일보사에 고발해왔다.
86년에 이 학교에 보결로 들어갔었다는 김모씨(23)에 의하면 대일외국어고의 보결학생 수는 매년 1백여명. 이들은 최소 1천5백만원을 내고 입학하며 「스쿨버스 1대」 「체육관 농구시설」 등 현물을 제공하고 들어온 학생도 있었다.
보결입학자들은 성적이 워낙 나빠 금방 표시가 나기 때문에 자신이 보결로 들어온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일부는 오히려 돈이 많다는 과시수단으로 삼는 경우마저 있다.
교사들은 수업이나 숙제검사 등에서 보결입학자들은 아예 제쳐놓는다.
이 학교의 학생들은 보결입학자는 물론 시험쳐서 들어온 경우도 대부분 용돈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집안이 부유하다. 그래서 옥상의 교장실 앞에 커다란 정원이 있고 이사장실에 전용엘리베이터가 설치될만큼 학교시설이 호화롭다.
이 때문에 같은 재단인 대일고 정릉여상 학생들과의 위화감이 커 대일외국어고 학생과 대일고 학생들의 싸움이 잦다.
교사들끼리도 재단파,반재단파로 갈려 반목이 심하다. 재단파는 30대 초·중반에 교무과장 등 요직을 맡지만 반재단파로 찍히면 실력이 있더라도 보직은 커녕 담임도 못맡는 경우가 허다하다.
재단의 눈에 나 같은 재단의 대일고 등으로 전출될 때면 학생들 사이에 「숙청 당했다」는 얘기가 파다해진다.
일부 교사들은 보결학생의 부모에게 월 2백만원의 고액과외를 권유하고 이를 받아들이면 학생의 내신성적을 올려주거나 두드러지게 편해하는 식으로 「보상」을 해준다.
고액과외를 하는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는 생활도 달라 쏘나타승용차와 소형차를 번갈아 타고 오는 경우까지 있다.
예체능계 대학에 재학중인 대일외국어고 졸업생 이모양(20)은 예체능계 진학 희망자들이 일찍 조퇴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고 조퇴문제에 돈이 작용한다고 고발했다.
조퇴를 하려면 담임교사의 허가는 물론 학생과장 교감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돈에 따라 아침에 출석만 하고 곧장 조퇴하는 학생,4교시 수업후 조퇴하는 학생,6교시·8교시까지 수업을 받는 학생 등 각각이다.
일부 담임교사들은 조퇴특혜를 주면서 학부모들에게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양은 학교성적이나 실기실력으로 도저히 대학에 들어갈 수 없는 보결학생들이 버젓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종종 보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사회부:설희관차장·강진순·김현수·장인철·여동은·남경욱·이진동·현상엽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