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재분배·대학발전 가능/찬/배금주의 초래 더 큰 부작용/반/공정성 무너져 국민 위화감/어려운 학생 장학혜택 이점▷각계 의견◁
조완규 교육부장관이 빠르면 94학년도부터 사립대의 기여입학제를 단계적으로 허용하겠다고 9일 밝힘에 따라 이 제도시행을 둘러싸고 찬반의견이 또다시 엇갈리고 있다. 교육부의 이같은 방침은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는 입시부정사건이 열악한 사립대의 재정상태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판단한 고육지책이라 할 수 있다. 기여입학제는 지난 86년 처음으로 소개된뒤 89년 동국대 입시부정사건으로 총장이 구속되는 등 큰 파문이 일자 활발하게 거론됐으나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해 논의가 중단돼왔다. 광운대 사태로 다시 이슈가 된 기여입학제를 시행하려면 먼저 공청회 등을 통해 폭넓은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며 기여의 범주와 특혜의 범위,기부금관리문제 등 전제조건을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기여입학제에 대한 각계 인사의 시각와 반응을 모아본다.
▲현승일씨(국민대 총장)=입시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돈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마치 전시에 돈의 힘으로 전쟁터를 피해가는 것과 같다.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총체적 부패라고 진단받고 있는 우리 사회현실에서 대학마저 부도덕한 제도를 합법화하려 한다면 국가의 앞날은 암담해질 것이다.
물론 양심의 보루라고 일컬어지는 대학사회도 부분적으로 썩어 있지만 대학 스스로 기여입학제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곪은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의지를 포기하는 행위라고 본다.
▲방열씨(경원대 교수)=부의 분배차원에서 전적으로 찬성한다. 기여입학제는 많은 어려운 학생들에게 혜택을 돌릴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뚜렷한 존재이유가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등록금 동결 등으로 점차 심화되어가는 대학의 재정난을 감안할 때 이 제도의 도입은 늦은 감이 있다.
이 제도를 활성화함으로써 도서관 증설과 장학제도 확충 등 대학발전을 기약할 수 있으며 부정입학을 방지할 수 있다.
다만 이 제도의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여러가지 보완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면영씨(홍익대 총장)=절대 반대한다. 기여입학제를 수용할 만큼 우리 대학이 성숙하지 못한 점이 반대의 가장 중요한 근거다. 혹자는 기여입학 대상자들의 자질과 수를 엄격히 제한하면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입부정이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현 상황에서 기여입학의 기준이 준수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성급히 기여입학제를 허용한다면 수십만 수험생들이 기회균등의 원칙에 의해 대학에 진학하는 공정성을 무너뜨리고 특수부유층 자녀에게만 노력없는 보람만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사회정의마저 실종케 할 것이 뻔하다. 기여입학제 논의보다는 대학이 스스로 운용을 합리화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오택섭씨(고려대 연구교류처장)=만성적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나라 사학 현실에서 기여입학제를 도외시할 수만은 없다. 현재 교육비 투자는 GNP 대비 3.3%에 불과하다. 턱없이 부족한데다 그나마 초 중등 교육에 치중해 있다. 김영삼 차기 대통령의 공약대로 임기내에 5%로 끌어올린다해도 현재 경제수준이 우리와 비슷한 홍콩 등의 평균치에 불과하다.
대학 자체의 노력과 정부지원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현실상 어려운 만큼 충분한 여론수렴을 통해 국민정서와 역행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신경림씨(시인)=기여입학제는 돈있는 사람들이 학력을 사겠다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까지도 대학입학은 실력만이 통하는 공정한 경쟁이라고 여긴다. 기여입학제가 허용되면 이러한 기본원칙이 깨질 것이다.
더욱이 지금 같이 사학의 도덕성이 의심받는 시기에 이 제도가 시행되면 오히려 사학의 학위는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명예만 더욱 실추될 것이다.
부족한 경비는 국고지원과 독지가의 도움으로 충당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떠 넘기겠다는 생각은 곤란하다.
▲박노학씨(관악고 교장)=불가피한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라고 본다. 기여입학제가 실시되면 유전입학,무전불입학이란 용어가 생겨날지도 모르며 국민들 사이에 위화감 조성이 우려된다.
특히 신흥대학들은 외형적 확대에만 주력하게 될게 뻔한데 이러한 대학들에 거액의 기여금을 내고 들어가 졸업한들 사회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이건용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기부금입학제 도입에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사학이 부정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재정의 결핍이라는 문제점 때문이기는 하다. 그러나 치열한 입시경쟁을 치르는 사회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학력에 대한 뿌리깊은 맹신과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할수 있다는 삐뚤어진 배금주의가 사라지지 않는한 기부금입학제는 더 큰 부정과 비리를 낳을 수 있다. 또 우리 국민 대부분의 정서는 돈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묵인하지도 않을 것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학을 적극적으로 재정지원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이학래씨(한양대 체육대 교수)=원칙적으로 찬성한다. 대학,특히 사학의 재정문제는 심각하다. 재원은 한정돼있고 수요는 매년 증가 추세이지만 등록금 인상도 학생들의 반대가 심해 인상폭에 한계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기여입학제를 도입해야 한다.
다만 기여입학제에 따른 부작용을 극소화하기 위해 기부금의 활용을 확실한 목적사업에 국한시키는 등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재윤씨(중앙대 무역학과 교수)=최근 부정입학 사태는 정부정책 당국과 일부 사립재단 및 총장들의 책임이다. 이들은 기여입학제를 실시하지 않으면 마치 우리의 교육이 낙후되는 것처럼 유도하는 인상이다.
기여입학제는 이론적으로 보더라도 상품시장 메커니즘을 교육시장 메커니즘에 대입시킨 것이다. 공정경쟁 교육시장의 요체는 지적·신체적·인격적인 본인의 능력일 뿐 돈이나 권력같은 제3의 능력이 개입하면 가치관의 혼돈만 오게 된다. 현실적으로도 땀흘려 한 글자라도 더 배우고 가르치겠다는 교육의 근본가치가 송두리째 파괴될 것이 자명하다.
기여금이 아니더라도 교육세 확대적용,산·학연구시설 통합운영 등 여러가지 대안으로 대학의 재원을 충분히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최세형씨(무역협회 상무)=기여입학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단계다. 대학의 경비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이를 등록금에만 의존하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기여입학제를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맑은 기여입학제가 돼야 한다. 대학의 경영합리화를 바탕으로 기여입학제가 부패되지 않는 방향에서 추진돼야 한다. 따라서 기여입학제를 도입하되 정부의 공정한 심사를 거쳐 기준에 맞고 조건을 갖춘 대학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해야 할 것이다.
▲홍옥표씨(청담고 교감)=병역문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특례를 없애는 것이 현재의 추세인데 기여입학제를 도입해 특례제도를 새로 만들 수는 없다.
기여입학제로 수학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학생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국가전체로도 손실이다.
학부모들한테 부족한 대학재정을 기대기보다는 능력있는 동문과 일반인들이 기금을 마련하거나 재단의 투자를 늘리는 방안이 더 바람직하다.
▲이덕호씨(서강대 교수)=기여입학제는 섣불리 찬반론을 말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사학 재정난을 타개할 수 있는 여러방법 가운데 하나로 기여입학제는 긍정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기여입학제가 실시되면 마치 교육을 돈으로 사고 파는 것처럼 느낄 수 있으나 대상자수를 엄격히 하고 학생들의 자질평가 등 선정기준이 확립된다면 건전한 정착이 가능하다고 본다.
기여입학제를 통해 사학의 재정난이 치유되고 양질의 교육에 자금이 재투자될 수 있다면 교육의 질도 아울러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제도적 운용의 묘를 살릴 방법과 관리다.
▲심충보씨(38·계성여고 교사)=기여입학제가 국민의 합의를 얻으려면 먼저 세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첫째 경제정의가 실현돼 지하경제에 대한 세금을 부과해 그중 일부를 교육에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대통령선거 등 수백억원씩 드는 선거풍토를 지양하고 그 자금으로 대학의 교육시설 확대에 투자해야 한다. 셋째 일부 기업들이 특정 일류대학에 편중되지 않고 모든 대학에 광범위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러한 여건이 충족된다면 기여입학제를 바로 시행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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