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기소로 대여 타협 “절망”/현대측 강력 사퇴요구 작용/「일하는 방식」싸고 계속된 내부 분란도 요인정주영 국민당 대표가 9일 정계은퇴를 선언함으로써 정 대표가 도모했던 정치실험은 일단 실패로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정 대표가 이날 의원총회에서 『정치인 경력이 짧기 때문에 그동안 많은 잘못을 했다』고 말한 것은 그 스스로 1년간의 정치활동을 「실패」로 평가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정 대표의 정계은퇴는 그러나 단순히 지난 1년간의 정치,특히 대선에서의 실패 때문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대선이후 상황이 어렵게 전개되는 가운데서도 정 대표는 계속 「정치계속」 의지를 보였고 「자기 쇄신」을 시사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 대표의 정계은퇴에는 본인의 의사와는 다른 여러가지 당내외 요인이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우선 정 대표 결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요인은 지난 6일의 검찰 기소였던 것으로 관측된다. 정 대표는 바로 전날인 5일까지만 해도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기소문제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정 대표는 그러나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된뒤 지난 7일 개인 약속을 모두 취소한 채 청운동 자택에서 두문 불출했으며 다음날인 8일 창당 1주년 기념행사에도 참석지 않고 서산농장으로 향했다.
정 대표 측근들은 기소와 관련된 정 대표 심경에 대해 『기업의 경우도 대표가 처벌을 받으면 부하 직원들은 풀어주는게 관례』라며 『정 대표는 당 관계자 82명이 구속된 상황에서 자신까지 기소된 것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고 전했다.
정 대표로선 자신의 기소를 정계은퇴를 요구하는 여권의 최후통첩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정 대표는 실제 대선이후 지구당 위원장을 비롯한 당관계자들이 대거 구속되고 현대에 대한 수사가 강화되는 상황에 큰 부담을 느껴왔다. 때문에 정 대표는 김영삼 차기 대통령과의 면담 희망을 밝히는 등 유화제스처를 보여왔다. 기소전날인 5일까지만해도 『여당에서의 압력은 없다』며 여권과의 원만한 타협을 모색해왔다.
정 대표는 그러나 검찰이 전격기소를 결정하고 구속사건과의 병합심리까지 요청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이자 더이상 협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듯하다.
여기에 현대의 강력한 「정계은퇴」 요구도 정 대표의 결심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한 측근은 『현대측은 정 대표에게 정계은퇴를 해야 당도 살고 현대도 살 수 있다며 은퇴를 강하게 요구해왔다』고 말했다.
정 대표 결심의 배경에는 이같은 외부적 요인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최근 김동길 최고위원 등의 당무거부에 대해 『당이 어려울 때에 그럴 수가 있느냐』며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일본에서 귀국한 직후 가진 의원총회에선 특별히 「신의」를 강조하며 의원들의 탈당 움직임을 경계하기도 했다.
정계은퇴를 할 수 밖에 없는 외부적 요인이 강해진 반면 국민당 또는 정치전반에 대한 정 대표의 「애정」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는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정 대표의 정계은퇴는 이같은 직접적 요인에 의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당내의 복잡한 사정상 어느정도 잠복돼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정 대표의 정치스타일이 정치권 출신 의원들의 요구와 너무 큰 괴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당내 분란의 뇌관이랄 수 있는 2천억원의 당운영기금 조성문제는 사실상 해결될 가능성이 거의 없었을 뿐더러 당운영방식에 대한 입장도 정 대표와 상당수 당직자간에 큰 차이를 나타냈던게 그동안의 사정이다.
기본적으로 수십년간 기업을 경영하면서 체득한 정 대표의 「일하는 방식」은 정치인들의 그것과 조화되기 어렵다는게 당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즉 정 대표는 정치에서도 근면과 추진력,과감한 결단 및 꾸밈없는 언행이라는 기업식 방식을 적용했지만 명분과 모양새를 요구하는 정치세계에서 원하는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최근들어 독단적 당운영에 대한 당내 비판을 의식,민주적인 모양새를 갖추려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도 사실이지만 정치메커니즘 자체에 익숙지 않아 끝내 당직자들과의 불협화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밖에 「내가 번 돈으로 정치를 한다」는 새로운 시도에서 불구하고 현대와의 관계가 완전 단절되기 어려운 현실도 정 대표가 정치를 계속하는데 장애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경제9단」 정주영은 정치라는 벽을 뛰어넘지 못한채 다시 새로운 「시련」을 찾아나선 셈이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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