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실조·질병·범죄·부패 만연… 구걸·매춘까지/쇠고기 1㎏ 17만원… 산업가동률 12%/후세인 정권은 요지부동… 국민만 희생【파리=한기봉특파원】 서방의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가 만 2년반 계속되면서 이라크의 사회와 경제가 황폐화해가고 있다.
미국과 이라크의 대결양상은 클린턴 신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이라크의 위기는 서방의 간헐적인 공습보다는 경제제재가 초래한 각종 부작용으로 인해 커져가고 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직후인 90년 8월6일 유엔안보리는 대이라크 경제제재 조치를 취했다.
르몽드지는 서방의 제재조치 2년반을 맞아 바그다드를 르포한 기사에서 서방은 후세인 정권의 붕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데는 실패하고 대신 이라크 국민의 희생과 모슬렘인 전통사회의 해체를 강요했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외부와 단절된 바그다드의 모습은 물가의 앙등과 피폐한 경제로 인한 생계난,범죄,부패의 증가,그리고 전쟁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구걸과 매춘의 등장 등이다.
이라크 국민들이 굶어죽지 않는 것은 정부의 생필품 배급제 덕분이다. 한사람이 한달에 밀가루 9㎏과 쌀 2.7㎏,설탕 1.5㎏,기름 5백g,차 약간과 비누 한장을 배급받는다. 이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량의 60% 정도에 불과하다.
고기류는 물론 포함돼 있지 않다. 쇠고기 1㎏은 약 85디나르(1디나르=2천80원,약 17만6천8백원)로 보통사람 월급의 약 3분의 1에 해당할 만큼 치솟았다.
식량의 수입은 경제제재 조치에서 제외되었지만 전쟁전 1㎏에 0.15디나르 하던 쌀은 14디나르이다. 이라크 화폐의 구매가치는 90년초에 비해 1백배 가량 떨어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바그다드에서 활동하는 국제아동기금(유니세프) 관계자는 영양실조 때문에 이 나라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구루병과 유아소모증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생필품 문제보다 심각한 것은 의약품의 부족이다. 의약품 수입량은 걸프전 이전의 약 10% 수준에 불과해 병원은 절반밖에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 보사부차관은 병원이 응급환자 밖에 치료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서방의 제재에 따른 직간접적 영향으로 지금까지 약 17만여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북부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주민 80%가 실직상태이며 10%가 한달에 10달러(약 8천원)이하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물자가 달리자 돈을 벌기 위한 매점매석이 등장했다. 지난해 7월 식량을 창고에 감춘 상인 42명을 처형한 정부는 특별위원회를 구성,매주 물가를 조사해 상한선을 정하는 등 강력한 가격통제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민간과 합동으로 회사를 설립,서방으로부터 1차 산품의 수입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인접 요르단이 이라크와의 무역을 강제 통제하기 시작한 이후 이라크정부는 터키와 물물교환 방식을 통해 석유과 가스를 주고 물자를 사오고 있다. 90년 이전에 2백억달러에 달했던 수입규모는 서방의 경제제재로 지난해에는 3억달러에 그쳤다.
경제제재와 함께 서방의 폭격으로 산업시설은 불과 12%의 가동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복구재건사업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전통적 농업국인 이라크가 식량은 당장 버틸 수 있다 하더라도 공습이 이어진다면 기간산업시설이 파괴돼 경제전반은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악화는 또한 회교사회의 모습을 변질시키고 있다. 종전에는 찾을 수 없던 범죄와 부패,매춘이 늘어나고 있다. 바그다드에 사는 서방의 한 관계자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 회교사회의 도덕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년전만해도 관리에게 술 한병 갖다준 적이 없으나 이제는 뇌물이 없이는 어떤 일도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어린이들은 생활을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구두닦이로 나서고 법에 의해 금지된 구걸을 하고 있다.
전쟁상황에서 축제를 하는 신흥 부유층도 많이 생겨나면서 빈부의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이들은 전쟁에 정신이 없는 국가의 느슨한 통제를 틈타 쿠웨이트와의 밀수 등 비정상적인 무역,상거래의 방법으로 치부하고 있다.
결국 서방의 대이라크 경제제재조치는 당초 의도와 달리 이라크 내부에 또다른 전쟁의 씨앗을 뿌리고 있을 뿐이며 후세인은 건재하다고 르몽드지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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