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정부에 “새 부담”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외교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옐친은 취임 1년여를 지나면서 「미국편들기」를 벗어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따른 미·러의 외교마찰은 91년말 소련붕괴후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다.
러시아의 「독자외교」는 최근의 이라크 사태와 유고내전에 대한 입장표명에서 두드러진다. 특히 미국이 공화당의 부시로부터 민주당의 클린턴 행정부로 바뀌는 때인 만큼 옐친의 두 사태에 대한 메시지는 클린턴의 외교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러시아는 미국의 잇단 이라크 공습에 대해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러시아는 나아가 유엔의 대이라크 석유금수제재조치의 철회까지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중립계 인테르팍스 통신은 26일 『러시아는 이라크의 원유를 재공급받기 위해 유엔의 제재조치 철회를 모색하라고 외무부에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러시아는 미국의 이라크 3차 공습직후 무력사용 자제를 요청했었다. 러시아는 91년 걸프전 때만해도 유엔안보리에서 다국적군 파견에 찬성표를 던졌었다. 그후 계속된 미국의 이라크 경제제재 등에도 러시아는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았었다. 중동지역은 구 소련의 가장 큰 무기시장이다. 또 이스라엘과 대결할 때 친아랍이었던 러시아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응징하는데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번 이라크 1차 공습때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도 참여시켰기 때문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이 독자적으로 공습을 강행하면서 이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당시 안드레이 코지레프 외무장관은 미국에 서한을 보내 민간인이 희생되는 무차별 폭격에 우려를 표명하고 『유엔의 승인을 받지않은 무력사용을 자재해달라』고 공식 요청할 정도였다.
이라크 사태를 둘러싼 미·러 외교의 삐걱거림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유고사태에서는 미·러가 아예 「다른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국은 유엔의 결의에 따라 세르비아든 크로아티아든 더이상의 확전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같은 슬라브민족인 세르비아편이다. 유고내전이후 세르비아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회교도들에게 「인종청소」를 자행해 국제적인 비난을 받을 때도 러시아는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크로아티아가 최근 영내 세르비아계를 공격하자 이를 강력히 비난했다.
미국은 물론 유엔의 크로아티아 비난결의에는 찬성했지만 유고사태의 원인제공자는 세르비아인으로 보고 있다.
옐친은 또한 지난해 10월 한국,12월 중국,금년들어 지난 27일부터 시작된 인도방문 등을 통해 아시아 중시외교를 분명히하고 있다. 구 소련의 역대 어느 지도자보다도 바쁜 발걸음이다.
이는 26일 미국의 아시아재단 연구소가 『미국의 영향력이 점차 감소하고 있는 아시아지역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클린턴 정부에 지적한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러시아의 이러한 외교자세 전환은 미국이 무차별 이라크 공습으로 「악수」를 두자 이를 호기로 최대한 이용해 외교국면을 전환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옐친은 내정문제도 있었지만 걸프전이후 세계의 「단일패권」을 장악한 미국에 정면도전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독주하는 미 외교의 「부당성」을 지적,제동을 걸음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약화된 권위를 만회하려 하고 있다.
옐친은 지난 12월 강경보수파가 장악하고 있는 의회와의 대결에서 개혁파의 대표인 가이다르 총리를 해임했다. 보수파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옐친은 이라크 사태나 유고문제에 대해 발언의 수위를 높임으로써 이들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속셈도 있을 것이다.
옐친의 홀로서기 외교가 아직까지는 정책이나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은 「발언」의 단계이고 대미 발언도 「경고」 보다는 우려의 차원이지만 막 출범한 클린턴 미 행정부에는 새로운 부담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남영진기자>남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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