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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조류와 교훈(부패와의 전쟁:7·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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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조류와 교훈(부패와의 전쟁:7·끝)

입력
1993.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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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독직방지/미국의 법과 제도/부정고발자 보호·전담수사국 설치/행정도 공개 국민이 감시자【뉴욕=김수종특파원】 뉴욕의 교포인 조병태씨(49)는 아시아에서 모자를 수입,미 전역에 공급하는 매출액 1천만달러 정도의 무역업을 하고 있다. 조씨는 91년 미 연방국세청(IRS)으로부터 갑자기 세무조사통고를 받았다. 국세청이 실시하는 무작위 세무조사대상에 걸린 것이다.

국세청직원 한명이 회사에 나와 진을 치고 1개월간 모든 장부를 뒤졌다.

15년간 미국에서 사업을 해왔으나 공무원과 접촉해 본 적이 없는 조씨는 초긴장했다. 조씨는 한국식 접대방법을 써보려고 첫날 커피부터 대접했다.

그러나 그 국세청직원은 이를 거절했다.

조씨는 하는 수 없이 그냥 놔두었다. 1개월후 조사를 끝낸 국세청직원은 장부기재상의 잘못을 몇가지 시정하도록 지적하고는 철수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미국에서 화물운송업을 하고있는 대한통운 뉴욕지사도 지난해 5월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았다. 한국인 회계사가 국세청직원에게 점심을 대접하려고 식당으로 데려갔으나 국세청직원은 식사후 계산서를 보자더니 자기몫을 팁까지 계산해 지불했다.

91년말 맨해턴의 브로드웨이에서 장사를 하는 한국인들의 모임인 경제인협회는 성탄절 파티를 열면서 이 지역 치안을 담당한 제13지구 경찰서장을 초청했다. 파티 참석자들은 돈을 주고 복권을 사도록 돼있었는데 회원들은 손님대접한다고 경찰서장한테는 공짜복권을 주었다.

공교롭게도 서장은 마이애미 왕복 비행기표가 당첨되어 싱글벙글 좋아했고 한국인들은 서장의 환심을 샀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이틀후 경찰서장은 파티가 즐거웠다는 편지와 함께 항공권을 반송해왔다.

미국이라고 청백리만 사는 별천지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과 비교하면 공무원 부정부패가 거의 없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시민들이 사업을 하거나 생활하는데 공무원부패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은 거의 없다. 공무원이 부패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와 법이 엄격할 뿐 아니라 공무원과 업자가 한국에서처럼 공생관계를 유지하지 않아도 되도록 제도와 관행이 확립되어 있다.

조병태씨의 경우 적지 않은 사업규모이지만 회사를 만들때부터 공무원과 직접 대면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주 정부에서 인가를 받는 일 등을 변호사에 맡기면 20일 정도면 허가가 나온다. 한국에서는 사업을 시작할때부터 인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돈을 써야하는 등 곤혹을 치르지만 미국에서는 아이디어와 자본금만 있으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씨는 『한국에서는 조그만 중소기업을 경영하려 해도 공무원과 은행을 담당하는 부서와 직원이 필요하지만 미국에서는 그같은 인력이 불필요해 비용을 2중으로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통운의 김상균지점장도 『업무상 세관 및 항만청과 접촉할 일이 많지만 법규에 맞는 일이면 합리적으로 처리되고 될일과 안될일이 분명하게 구별되기 때문에 사업이 편하다』고 설명했다.

미국사회에서 한국인들이 짧은 기간에 근면성 하나로 사업에 성공하는 요인중의 하나가 바로 공무원의 부당한 간섭과 부패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부패문제는 가끔 사회 및 정치문제가 되기도 한다. 경찰이 마피아 등 범죄조직과 결탁했다거나 고위공직자가 공금을 유용해 적발되는 사례가 간혹있다. 또한 선거와 관련된 정치인의 윤리문제가 현재 정치이슈화 되어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미국 사회에 원래부터 구조적 부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은 건국후 엘리트 시스템에 의해 공직자를 임용해 오다가 1828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 정부에서부터 공무원 임용을 소위 「엽관제도」로 전환하면서 공무원 사회는 부패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선거에서 공을 세운 사람이 행정부의 요직을 맡아 이들이 업자와 결탁,부정을 저지르는 풍조가 만연했다.

그러나 1880년대 가필드 대통령 암살사건이 계기가 돼 엽관제도에 대한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범인은 선거를 이용해 취직운동을 벌이다 뜻대로 안되자 대통령을 암살한 것이다.

이 암살사건은 직업공무원 채용의 현대화를 이룬 「펜들헌법」 제정의 전환점이 되었다.

연방정부안에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막기위한 법적장치가 확립된 것은 워터게이트사건 이후인 지난 70년대 말이다. 소위 「공직개혁법」이 발효되면서 공직자 윤리와 감사기능이 도입됐다. 이같은 장치는 한국의 부패방지 제도와는 달리 살아있는 법규범이자 예방적인 기능도 갖고 있다.

미국의 공직자 사회,특히 워싱턴의 연방공무원 사회를 「어항속의 금붕어」라고 부르는 것은 공무원 감시기능이 그물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법 제도면에서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감시기능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이 고발자보호법(Whistle­blowing Protection Act)과 정보자유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이다. 고발자보호법은 공무원이 부정을 했거나 부패음모에 가담하는 것을 아는 동료가 이를 고발했을 경우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이다. 정보자유법은 국민 누구나 정부부처의 각종 자료를 요구해서 볼 수 있는 감시기능이다.

예산이 정당하게 쓰였는지를 국민 누구나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법은 언론기능과 연결되어 강력한 부패방지 장치가 된다. 미국에서는 CIA에까지 이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되고 있다. 걸핏하면 모든 공문서를 「대외비」로 분류,행정을 비밀주의로 하고 있는 한국의 행정관행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정도이다.

미국에서는 일반 공무원사회의 부패문제는 적은 대신 정치적 부패가 항상 여론의 도마위에 오른다. 국회의원의 선거운동 경비조달과 관련한 윤리문제가 선거때마다 제기되며 지난해 총선거에서도 워싱턴의 부패문제가 선거쟁점으로 부각됐었다. 또 행정부내의 고위공직자가 행정부를 떠난후 재직중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사기업을 위해 로비활동을 벌이는 것도 미국 공직사회의 중요한 윤리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적 부패에 대한 감시기능이나 법적규제는 연방정부만이 아니라 주정부·시정부에서도 강력하기 때문에 부패가 자랄 여지가 없다. 뉴욕시에도 전담 수사국을 두어 공무원 부패를 따로 수살할 정도다. 미국의 제도는 한국처럼 유명무실한게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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