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18 대통령선거가 끝난지도 벌써 한달이 훨씬 지났다.오는 2월25일 새 대통령이 취임하기까지는 꼭 한달이 남았다. 물러나는 노태우대통령은 벌써부터 사적 공적 성격의 송별연을 청와대에서 갖느라 연일 바쁜 모습이다. 김영삼 새 대통령은 취임후에 펼칠 국정의 청사진을 준비하고 손질하느라 역시 바쁘다. 그동안 정부의 인계인수를 놓고 행정부와 인수위원회가 부산하게 몰아가더니 그것도 이제는 일단락된 것 같다. 또 민자당은 민자당 나름대로,김 차기 대통령은 또 개인적 구상을 통해 개혁의 방향과 일정을 짜느라 소리없이 바빴던 것도 사실이다.말하자면 선거가 끝난뒤 지금까지 제각기 무척 부산하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지금와서 보면 손에 집히는게 없는 것 같다.
앞으로 김영삼정부가 무슨 문제부터 어떤 방향으로 풀어갈 것인지 그 대강조차 국민앞에 제시된 것이 없다. 산적한 숙제와 과제만 백화점의 상품처럼 여전히 진열되어 있을 따름이다. 개혁과 개선에 국민의 기대는 엄청난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속수무책의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가장 구체적인 예로 최근 민자당의 자체 개혁시도를 보자. 정치부조리의 원천인 정치자금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방대한 기구와 인원을 대폭 축소한다며 손을 댔다가 사무처의 반발로 금방 물러서지 않았던가. 자기 집안문제도 고치지 못하면서 다른 문제에 어떻게 칼을 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다가 개혁이고 뭐고 구호만 외치고 마는 것 아닌가. 안정을 쫓다가 보면 현실에 안주하게 마련이고,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하려면 안정이 해쳐지는게 당연한데 과연 「안정속의 개혁」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지금 각계에서는 새 정부가 신한국을 건설한다니 모든 비리와 부조리가 일시에 사라지고 새 나라가 탄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과분한 기대뒤에 오는 실망은 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렇다고 이제 와서 성급한 개혁은 금물이라며 찬물을 끼얹을 수도 없다. 「교통체증이 시원하게 뚫리는 도로」 「버리고간 농민들이 다시 찾아오는 농촌」을 만들겠다고 선거 때에는 말하기 좋다고 이것 저것 모두 약속을 해버렸지만 막상 실현시키기는 어려운 숙제들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당장 속시원하게 풀릴 수 있는 성질의 과제가 아니다. 그런 공약들이 어디 한둘인가. 각 분야별로 손꼽아보면 수백가지에 이른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주저앉을 수는 없다. 기득권층의 반발이 거세고 저항이 거칠더라도 개혁할 것은 해야한다. 지도자의 용단이나 결단은 바로 이런 때에 필요한 것이다. 국가의 장래를 내다 볼 줄 아는 통찰력에 의해서 이뤄지는 결단이라면 지금 당장 반발이 일고 비판이 있더라도 나중 역사의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눈앞의 순간적인 편익에 사로 잡혀서는 장기적인 국가발전을 내다 볼 수 없다. 5년간의 임기도 끝나고 먼훗날 역사와 국민이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국정개혁의 방향과 우선 순위를 가려 과감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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