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가가치 시스템 분야는 황무지 상태/서비스업으로 분류 각종 지원도 못받아「소프트웨어를 구입하면 컴퓨터를 끼워준다」는 내용의 광고가 최근 신문에 실려 관심을 끌었다.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를 사면 끼워주는 것쯤으로 인식하고 너나 할 것없이 불법복제를 일삼는 헌실을 보다 못한 한 소프트웨어업체가 소비자들에게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인식시키고자 궁여지책으로 이런 「역설적인」판매방식을 채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해프닝이다.
머리가 나쁘면 팔다리가 고생한다. 첨단정보산업을 이끌어 갈 「두뇌」인 소프트웨어산업의 발전이 이뤄지지 않아 팔다리(하드웨어)를 제대로 못 놀리고 전체 산업 경쟁력이 통째로 흔들릴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해 9월 한국 과학기술연구원이 펴낸 자료에 따르면 기업의 생산성,매출액,인력 등을 종합한 소프트웨어 산업수준은 우리나라를 1백으로 했을때 미국은 3천1백11,일본은 1천4백60으로 멀찌감치 달아나 있고 경쟁국인 대만역시 1백17로 우리를 앞지르고 있다.
92년 국내 소프트웨어 부문 매출규모는 6천6백65억원에 이르고 있다. 이는 91년에 비해 21.2% 증가한 것이고 86년 8백8억원의 매출규모에 비하면 8배이상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외형적인 수치일 뿐 내용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매출액의 43%가 수입 소프트웨어 매출액이다. 불법복제돼 사용되고 있는 소프트웨어를 감안하면 80%이상이 외국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보처리 분야에서의 기술개발단계를 기초개발발전성숙의 4단계로 구분할 때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각 분야의 기술수준은 기초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스템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데이터 베이스 관리 시스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개발하거나 할글처리기능을 추가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응용 소프트웨어만이 그나마 부분적으로 「개발」단계에 이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부가가치가 가장 높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분야의 자체기술 수준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대표적인 시스템 소프트웨어인 MSDOS를 사용하느라 지난해 금성 삼성 대우 현대 등 국내 컴퓨터 생산업체들이 미국의 마이크로 소프트사에 지불한 로열티는 3천5백만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주)소프트라인의 성필원사장은 『소프트웨어 산업이 이처럼 뒤떨어진 이유는 무엇보다도 산업초창기에 일반에 뿌리박힌 「베끼기 습성」탓』이라고 못박는다. 지적 소유권보호가 강화되고 기술을 베끼는 것을 방지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베끼기도 한계에 도달,기술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이에따라 소프트웨어 분야 수입이 85년 2천3백만달러에서 91년에는 1억4천4백만달러로 늘었다. 수출은 1천4백만달러로 수입의 10분의1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정부도 각종 프로젝트에서 소프트웨어의 특성과 기술내용은 무시한채 최저가 낙찰제를 실시하는 등 산업형성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업체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행정 전산망사업에 참여했던 중소 소프트웨어업체 사장은 『수익성보다는 「일단 공신력을 쌓고 다음 기회를 노리자」는 생각으로 전력을 쏟은 결과 회사가 거덜날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다.
기업들도 연구개발보다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다. 대기업이 생산한 컴퓨터에 자사 소프트웨어를 대당 2백50원을 받고 내장판매해오던 보람컴퓨터 박길순사장은 이 회사가 자사의 소프트웨어를 분석,비슷한 소프트웨어를 자체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고급 전문기술인력의 부족 또한 소프트웨어산업의 앞날에 먹구름이 되고 있다. 정보처리기업인 (주)STM은 매년 전공에 관련없이 신입사원을 뽑아 1년간의 자체교육을 거쳐 실무에 투입하고 있다. 대학에서 정보처리 관련학과를 전공해도 실제업무에는 별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진흥협회에 따르면 92년 현재 소프트웨어 전문인력 수요는 2만7천명이었으나 공급은 1만9천명수준에 그쳐 30%에 가까운 인원부족률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정보사업기획단을 발족시키는 등 움직임을 보이고는 있으나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소프트웨어산업을 따라잡기에는 발걸음이 너무 늦다고 업계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는 소프트웨어산업을 서비스업으로 분류해 각종 지원혜택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주관부처도 상공부 과기처 체신부 교육부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국민대 정보관리학과 이국철교수는 『정부는 하드웨어에 치중해 왔던 시각을 넓혀 종합적인 소프트웨어 육성책 마련에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기업 가계 등 경제의 세 주체 모두가 「소프트웨어마인드」에 걸맞는 행동틀을 갖추는 데서 기술개발도 산업경쟁력도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김준형기자>김준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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