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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시대 희망과 도전(미국의 새 출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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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시대 희망과 도전(미국의 새 출발:상)

입력
1993.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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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 아메리카 드림 풍미/걸프전뒤엔 「경제전쟁」 기다려【워싱턴=정일화특파원】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46)이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 앞에 손을 들고 미국 제42대 대통령으로 취임선서를 한 20일은 지난 3∼4일동안 워싱턴에 밀어닥친 겨울 추위에 비해 훨씬 따스함을 주는 날씨였다. 19일까지 줄곧 섭씨 영하 5도에서 영상 5도 정도를 맴돌던 수은주가 이날 영상 10도를 웃돌았다.

의사당 앞에서 대통령 취임선서 현장을 직접 지켜본 1만여 축하객들은 물론 전국에서 TV로 이를 바라본 미국인들은 워싱턴 날씨와 변화처럼 이 젊은 대통령의 취임에 「따뜻한」 기대와 희망을 걸었다. 워싱턴 포스트지의 조사에 의하면 취임 이틀전인 18일 현재 미국인들중 53%가 클린턴시대에 대해 「흥분에 찬 기대」 또는 「상당한 기대」를 걸었다. 이는 4년전 부시 행정부가 출발할 때의 38%에 비해 보면 괄목할만한 기대치이다.

뉴욕 타임스지도 같은 조사에서 클린턴정부에 대해 거는 기대치가 의료보험 개선의 경우 80%,교육의 경우 81%,직장 창출의 경우 79%,환경개선의 경우 62%,그리고 공무원 부담이득 통제의 경우 66%나 됐다. 클린턴의 시대는 확실히 기대와 희망의 신념이 담긴채 막을 열었다. 클린턴은 그의 선거유세중 고향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그가 교통사고를 당해 젊은 생애를 마감한 한 상인의 유복자로 태어난 곳도 마침 「호프」(Hope)라는 이름의 소읍이었다. 기자는 클린턴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내외의 무덤이 있는 호프를 방문한 적이 있다. 텍사스에서 자동차로 1시간쯤의 거리에 있는 이 소읍은 인구가 불과 3만명쯤으로 수박이 많이 나 매년 「수박미인대회」를 개최하는 별로 특징도 없고 부촌도 아닌 그런 곳이었다.

유복자인 클린턴은 자랄 때 어머니가 뉴 올리언스의 간호학교로 진학하는 바람에 조부모와 함께 작은가게를 하며 살았다. 그때의 집이 지금도 페인트칠이 퇴색된채 길 한곁에 서있다. 젊은 과부가 된 어머니 버지니아는 결국 4명의 남자와 5번 결혼하는 억센 삶을 살았고 그런 어려움속에서도 클린턴은 색소폰과 책을 벗하면서 열심히 노력해 「세계의 대통령」직에까지 오른 것이다. 클린턴은 고향의 추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한번도 『희망(Hope)을 잃은 적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클린턴이 불을 지펴놓은 「미국의 희망」은 우선 경제활성화에 대한 기대이다.

그는 세계 최대의 부국답지 않게 2천8백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의 재정적자 구조를 바꾸겠다고 공약했었다. 4년 임기동안 적자폭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말했다. 이 공약을 액면 그대로 지키기에는 벌써 미국의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형편이지만 적어도 한해에 20억달러씩이라도 줄여감으로써 미국의 꿈을 이루어갈 전망이다.

미국민들은 의료보험제도 개선·직업창출·에이즈 등 생활 구석구석까지 클린턴에 기대를 걸고 있다.

볼품없는 한 유복자인 클린턴이 험한 환경을 뚫고 미국 대통령의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 「아메리카드림」이 클린턴 행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온 미국에 다시 풍미하고 있다.

취임식이 끝난후 의사당과 백악관을 잇는 8㎞의 넓은 펜실베니아로에서 역대 대통령 취임식후의 행사로는 제법 큰 규모의 가두행진이 있었다. 이들은 클린턴을 선두로 미국인들의 희망을 온통 백악관으로 모으는듯 백악관쪽으로 당당히 걸어갔다.

클린턴이 이처럼 불타오르는 미국인들의 기대와 희망을 어떻게 현실화시켜갈지는 의문이다. 백악관의 주인이 부시에서 클린턴으로 바뀌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미국이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사회를 하루 아침에 변화시키는 것은 무리이다.

정권교체의 영향은 절대로 빨리 나타날 수가 없다. 아마도 클린턴 전임자 조지 부시가 퇴임 막바지까지 벌여놓은 이라크사태를 새 정부 출범의 과도기적 평온을 위해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부시가 군대를 파견한 소말리아나 심심하면 두드리던 이라크는 사실 미군에게는 거의 1백% 안전이 보장되는 전당이다.

월남전이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진흙탕이 아닌 일방적인 승리가 보장된 전쟁아닌 게임인 것이다. 클린턴은 부시가 하던대로 가끔 사담 후세인에 대한 강경발언을 하고 여차하면 인명피해의 위험이 없는 토마호크 미사일 몇발만 쏘아도 「강경한 대통령」 「전쟁에 이기는 대통령」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구체적인 숫자까지 제시하며 늘어놓았던 정치공약에 대해서 『왜 실천하지 않는가』라는 유권자들의 추궁을 받지않아도 될 것이다.

클린턴이 취임직후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사항은 국내 경제문제가 아니라 「이라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소말리아 파견군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 화급한 국제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이점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는 국내 경제문제를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고 또 안전한 출발이 된다.

그러나 클린턴은 초기에 비록 해외군사 개입문제 때문에 국내문제를 약간 뒤로 제쳐둘 수가 있다 하더라도 결국엔 국내문제를 둘러싸고 생사를 건 「한바탕의 전쟁」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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