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얼굴가진 “반도체 선진국”/세계 최고 공정기술에 설계는 걸음마 수준/고부가가치 「비메모리」 명함도 못내밀어국내 반도체산업은 반쪽이 서로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한쪽에서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다른쪽에서 보면 얼굴도 내세우지 못할 만큼 형편없는 모습이다.
반도체는 한국의 최대 수출 품목이면서 한편으론 제2의 수입 품목이기도 하다. 지난해 62억6천만달러 어치가 수출된 반면 49억9천만달러 어치가 수입돼 수출·수입 양쪽의 간판 역할 품목이 됐다. 이같은 이율배반은 우리가 반도체 기술의 반쪽만을 갖고 있는데서 비롯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메모리반도체(정보를 단순히 축적하고 기억해내는 것)분야에서는 일본·미국 업체들도 두려워하는 세계 최정상급에 올라있다.
반도체 관련 세계적인 시장조사업체인 미국의 데이타퀘스트사가 발표한 91년도 세계반도체 시장점유율 보고서에 따르면 메모리 분야에서 한국은 확고부동한 세계 2위권이다. 세계시장 점유율이 11.6%로 1위인 일본(75%)과는 아직까지 큰 격차를 보이고 있지만 빠른 속도로 일본을 추격하고 있다. 특히 세계 반도체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4메가 D램에서는 삼성전자가 단일기업으로 세계 2위에 랭크될 만큼 일본과 막상막하의 접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내업체들이 일본과 거의 동시에 세계 최초로 64메가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우리나라가 메모리분야에서 최정상급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메모리반도체 생산은 웨이퍼가공 및 조립 등의 공정기술만으로 충분한데 우리나라의 공정기술이 세계 최고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메모리 반도체(인간두뇌처럼 스스로 정보처리를 하는 것)분야에서는 명함도 못내민다.
앞서 데이타퀘스트의 자료를 보더라도 이 분야에서 한국제품의 시장점유율은 거의 미미하고 세계 10위안에 드는 한국기업은 하나도 없다.
주목해야 할 점은 비메모리제품이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고부가 가치성이다. 메모리와 비메모리제품의 시장규모(가격기준)는 4대 6이다. 비메모리제품의 용도가 점차 넓어지면서 시장규모도 비메모리 쪽이 훨씬 빠른 속도의 증가추세에 있다.
특히 비메모리제품은 4메가 D램 등 메모리제품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부가가치가 높다. 컴퓨터의 핵심반도체로 쓰이는 마이크로 프로세서(논리소자)의 경우 단가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1개에 2백50달러(386급) 수준으로 4메가 D램 반도체(12달러)의 20배나 된다. 비메모리의 또 다른 종류인 주문형 반도체(쓰임새에 맞춰 특수기능을 부가한 소량 다품종제품) 역시 높은 부가가치를 갖는 제품이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선진국이라고 하나 마이크로 프로세서 같은 것은 거의 전량을 미국에서 수입해 쓰고 있고 주문형 반도체도 대부분을 일본 등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관련기술이 제로상태(마이크로 프로세서)이거나 초보적인 걸음마 단계(주문형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비메모리 반도체를 만들수 있는 관건은 기초기술이면서도 최고도의 기술인 반도체 소프트웨어의 「설계기술」에 달려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 설계기술면에서는 공정기술이 세계 최고수준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형편없이 낙후돼 있다.
결국 메모리와 비메모리로 양분되는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반쪽짜리 기술로 힘겹게 반쪽의 정상을 넘보고 있는게 국내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다. 반쪽짜리 기술마저 온전한게 아니다. 제조설비나 시험·검사장비는 95% 이상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수입의 80% 가량을 장비가 차지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의 주대영 책임연구원은 『우리 반도체 산업이 완전한 정상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비메모리 분야에서의 기술개발이 관건』이라며 『대학의 전자시스템 설계과 신설 등을 통한 장기적인 관련 인력 양성을 위한 정부·업계 공동의 획기적인 투자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각고의 기술개발 노력과 과감한 투자로 메모리 분야에서 괄목할 성공을 거두었듯 관련업계와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비메모리 분야의 장벽도 깨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송태권기자>송태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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