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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 지원 “동분서주”/역대 산업연구원장 무얼하나(인물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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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 지원 “동분서주”/역대 산업연구원장 무얼하나(인물광장)

입력
1993.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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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보협회장 맡아 「이익환원」 앞장/정소영씨/대학출강 후진양성/정재석씨/주공 사장 능력발휘/김대영씨/동아경연 이끌며 대북진출 박차/박성상씨지난 75년 문을 연 산업연구원(KIET)은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함께 국내 경제분야의 대표적인 싱크탱크(THINK TANK)로 꼽히고 있는 연구기관이다. 그러나 한국개발연구원이 거시경제정책을 지원하고 있다면 산업연구원은 산업,지역,무역 등 미시적인 분야의 경제정책과 대외경제정책 수립을 지원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또 KDI와는 달리 업계에 직접적인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산업연구원은 정부와 업계 양쪽으로부터 필요성을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정부 출연기관이면서도 이처럼 업계의 길잡이 역할도 하고 있는 산업연구원의 원장은 정부의 정책수립 과정을 잘 이해하면서도 업계의 가려운 부분을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막중한 자리. 따라서 산업연구원장은 해박한 경제지식을 갖추어야 할 뿐 아니라 정부의 경제정책 맥을 짚을줄 알고 기업의 현장감을 이해하는 다재다능한 인물이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역대 산업연구원장은 정재석 초대원장으로부터 지금의 황인정원장까지 모두 9명. 이들은 대부분 산업연구원장의 자격요건을 두루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역대 원장중 3년 임기를 채운 사람은 초대 정 원장과 5대 문희화원장 2명뿐이다. 산업연구원이 정치권의 변화에 민감하게 움직여야했던 기관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직접 관심을 보인 탓에 연구원의 성격은 물론이고 원장에게도 정치바람이 직접적으로 미치곤 했었다. 또 연구원의 명칭도 처음의 「중동문제연구소」 「국제경제연구원」 「한국 산업경제기술연구원」 등을 거쳐 84년에야 지금의 이름을 얻을 수 있었다. 명칭이 바뀔 때마다 역할과 관할부처도 변했다. 그동안 두차례의 통폐합과 분할과정을 거쳤으며 폐지논쟁에도 휘말렸었다.

산업연구원이 정치적 변화에 민감했던 만큼 역대 원장들의 취임전 경력이나 퇴임후 자리도 각양각색이다. 초대 정 원장은 산업연구원장 재임시 신임을 받아 경제기획차관 상공부장관 등을 지냈고 대통령경제수석을 거쳐 2대원장으로 부임했던 정소영씨는 정치바람에 몰려 채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났다. 4대 사공일원장은 산업연구원장 재임중 청와대로 옮겨갔고 박성상원장은 산업연구원장과 수출입은행장 한국은행 총재 등을 넘나들었다.

5대 문 원장은 생산성 본부로,6대 홍문신원장은 한국감정원으로 자리를 옮겨 두기관을 각각 책임지고 있다. 8대 송희년원장은 산업연구원에서 곧바로 한국개발연구원장으로 옮겨가 우리나라의 대표적 국책연구기관을 모두 책임져온 흔치않은 경험을 갖게됐다. 국내 통계학박사 1호인 9대 김대영원장은 한국개발원 수석연구원,한국과학원 교수,민자당 전문위원,건설부차관 등 화려한 경력으로 산업연구원장에 입성했다가 지금은 주택공사 사장으로 그 동안의 풍부한 경험을 살려나가고 있다.

▷정재석씨◁

현재 산업연구원의 뿌리를 내리게 한 정 원장은 공직을 떠난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초빙교수로 근무했다. 지금은 외국어대 경영대학원에서 주2회 강의를 맡고 있다. 학교를 쉬는 날이면 자택뒤의 아차산에 올라가 건강을 다진다.

▷정소영씨◁

청와대 경제수석과 농수산부장관으로 3,4공의 경제개발계획에 깊이 참여했던 정씨는 산업연구원장을 마친뒤 89년부터 생명보험 협회장을 맡고 있다. 생보협회 회장 취임후 정씨는 탁아소 건립,결식노인 지원,농어촌 지원 등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이라는 협회설립 취지에 맞는 일을 찾아 뛰고 있다.

정춘택 은행연합회장 등과 골프를 즐기고 있으며 아마5단의 바둑,도자기수집,사냥,승마,사진찍기 등 다양한 취미활동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박성상씨◁

산업연구원장을 두차례나 역임한 박씨는 지난 88년부터 남덕우 전 총리가 설립한 동아시아 경제연구원에서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동북아경제권 구상의 하나인 두만강 개발계획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두만강개발계획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를 다녀왔으며 이에 앞서 6월에는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또 9월과 11월에는 한국경제 발전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중국과 자메이카에 다녀오는 등 바쁘게 지내고 있다. 틈틈이 남 전 총리와 신병현 전 부총리,이해원 전 보사부장관,박승 전 건설부장관 등과 골프를 즐긴다.

▷사공일씨◁

KDI 부원장 시절부터 5공 경제의 핵심참모로 활동하던 그는 잠시 산업연구원장을 맡은이후 바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자리를 옮겨 5공 후반기 경제계획을 주도했다. 88년 12월 재무장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난후 89년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에 있는 국제경제연구소 초빙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세계경제속의 한국경제」라는 책을 썼다.

91년에 탈고한 이 책은 13일 미국에서 출판기념회를 갖고 시판되기 시작했다. 지난 9일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가는 길에 하와이대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이 책은 곧 한국판으로 국내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다.

오는 2월중 무역회관에 「세계경제연구원」이라는 간판으로 개인 연구소를 차려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나갈 계획이다. 또 라마다 르네상스호텔옆에 있는 단전호흡도장 국선도에서 매일 아침 6시부터 1시간20분씩 단전호흡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이종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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