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재패니카(PAX JAPONICA)」란 용어가 동남아시아 언론에 심심치않게 등장하고 있다.이 지역에 대한 일본세의 급격한 부상과 헤게모니 장악시도를 「팍스 아메리카나」에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팍스 재패니카」는 아직은 설익은 개념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는데 상당한 의미가 있다. 「팍스 재패니카」가 미래의 질서로 나타날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기운이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팍스 재패니카」는 이처럼 먼 훗날의 얘기일지 모르나 그 전단계라고 볼 수 있는 「엔 블록」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적어도 동남아가 일본의 경제권에 편입되어가고 있다는데 이의가 없다.
과연 일본은 「엔 블록」을 넘어 「팍스 재패니카」를 추구하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취임 2년여만에 처음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4개국을 공식 순방중인 미야자와 일본 총리의 발걸음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순방의 표면적 이슈는 일본과 아세안간의 경제협력 증진이다. 그러나 일본이 이 지역에서 기존의 경제협력 차원을 넘어 새로운 정치·안보적 역할과 위상강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냄새가 너무 강하게 풍기고 있다. 미야자와 총리가 15일 방콕에서 밝힌 이 지역에 대한 일본의 장기정책은 「미야자와 독트린」으로까지 불리며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있다.
일본은 캄보디아에 유엔평화유지군으로 병력을 파견한데 이어 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인도차이나 3개국의 경제재건을 돕겠다고 나서고 있다.
태국은 일본에 20억달러의 인도차이나 재건자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고 일본은 태국과 함께 인도차이나 재건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천명하고 있다. 일본은 아세안 장악에 이어 아직 손길이 미치지 않은 인도차이나반도를 우회적으로 뚫고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본이 이토록 동남아시아에 집착하고 있는 이유는 정치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지역적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동남아가 갖는 경제적 가치와 잠재력 때문이다. 이 지역은 일본의 최대 교역 파트너일 뿐 아니라 자원의 보고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북방외교도 좋지만 남방외교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을 미야자와의 발걸음은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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