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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취임전략/김창렬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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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취임전략/김창렬칼럼(토요세평)

입력
1993.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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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통령 취임식날 비가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하객 3만명을 위한 우산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 우산을 만인산으로 하면 어떤가.

대통령직 인수위의 자문을 받은 어떤 사람이 이런 아이디어를 냈더라고 한다(한국일보 1월10일자 4면). 어쩌자는 것일까.

좀 벙벙해서,사전을 펴 보니,꽤나 설명이 길다.

『만인산=(고제) 선정을 베푼 원이나 지방장관에게 송덕기념으로 그 고을 백성이 주던 물건. 모양은 일산과 같은데,비단으로 꾸미고,가장자리에 여러 조각을 느리어 유지의 성명을 기록함』

그러니까 만인산은 퇴임할 때 건네던 전별품이다. 우산도 양산도 아니다. 설명의 어느 구석을 뜯어봐도 32년만이라는 문민 대통령 취임식에 만인산을 받들어 들어야할 까닭을 찾을 수가 없다.

만인산은 사안에 불과한 것이니까,그것을 가지고 인수위를 나무랄 수는 없다. 대통령 취임식 날을 공휴일로 하자거나,여의도에서 청와대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이자거나 하는 따위도,일단 하지 않기로 했으면 그만일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아이디어의 엉뚱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수위 발족을 전후해서 엿보인 혼선과,외부사람까지 불러다 행사 아이디어를 동냥하는 자세에 진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취임식 하나만을 놓고 생각해도,대통령 취임행사를 왜 그토록 이벤트화·축제화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런 것이 새 대통령의 성품과 취향,대국민 공약에 걸맞을 것 같지도 않다. 그가 확보한 정당성은 억지 섞인 상징조작·이미지 조작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이번 대통령 취임식은 그 뜻을 십분 새길 수 있으면,그것으로 족하다. 그 요체도 뻔하다. 식은,격식을 갖추되,검소해야 한다. 다짐의 자리답게 숙연해야 한다. 3만명 하객의 입장을 포함한 모든 행사시간은 되도록 짧게 잡는 것이 옳다. 날씨 때문이다.

「새 문민정부」 「작은 정부」의 첫 그림은 그렇게 그려야 한다. 조촐함속에 「고통분담」의 뜻을 깃들이게 하면 된다.

이렇게 말하면 서운해하는 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식은 어디까지나 식이다. 그 모양이 새 대통령의 성공여부를 판가름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인수위가 더 깊이 고려해야 할 것은 「모양」이 아니라,「실속」이다. 나라의 신·구 키잡이가,어떻게 하면 매끈하게 교대할 수 있겠느냐다.

예를 하나 들자면,대통령의 「악수교대」에도 고려할 점이 있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의 교대시간을 1월20일 정오로 못박고,새 대통령에게는 선서를 요구한다. 그래서 대통령 취임식은,정오 직전에 취임선서,정오 직후에 취임연설을 하도록,시간을 잡는다. 빈틈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남는다. 1월20일이 일요일인 경우다. 그런 해에 취임한 제5대 먼로 대통령은 취임식을 하루 미루었다. 대통령이 24시간 공석이었던 셈이 된다. 이런 폐단을 막기위해 제1기 때의 레이건 대통령은 1월20일 일요일 정오,가족 친지와 정부요인 90명이 모인 가운데 비공개로 취임을 선서하고,다음날 취임식에서 선서를 거듭했다.

우리나라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현행 헌법에 의하면,대통령은 2월25일 자정에 교대한다. 전례대로 하면,헌법이 요구하는 새 대통령의 취임선서까지 10시간 남짓이 빈다. 한동안 청와대는 전 대통령이 차지하고,그동안 현 대통령은 사저에 머물게 된다.

이것은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같다. 대통령 취임선서에 무슨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대통령이 공석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한동안」사이 국가비상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럴 경우,비상계획 발동 등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인수위하는 일에 사소한 일이란 없다. 사소해 보이는 「한동안」도 미리 검토해 두는 것이 옳다. 이 말은 행정기능의 인수·인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국가기밀·비상계획 사항의 인수준비는 더욱 철저해야 한다는 말과도 통한다.

뻔한 경구같지만,준비없는 성공은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철저한 취임준비만도 취임후의 성공을 보장한다.

반면 그 준비기간이,새 대통령에게는 다시 없는 호기로 된다. 미국의 정치학자 폴 라이트의 말을 빌면 『(취임준비 기간중)새 대통령의 인기는 높고… 그의 정책결정에 반발할 집단도 없다. 이 때야말로 변화를 시도할 시기다』(김충남 「성공한 대통령·실패한 대통령」).

철저한 대통령 취임준비는 이 호기를 전략적으로 활용함을 뜻한다.

따라서 뒤따르는 물음은,차기 대통령과 대통령직 인수위가 과연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느냐가 된다. 개혁을 지향한다면 개혁의 전략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이 물음을 「만인산」과 겹쳐 생각하며,나는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취임초에 했다는 말을 떠올린다.

『나는 내 정치적 자산을 매일 조금씩 잃어버리고 있다』

지금 차기 대통령의 처지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벌써부터 개혁의지의 후퇴를 걱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호기는 하루하루 줄어든다. 그리고 구정연휴마저 지나고 나면,헤벌어졌던 신년 기분은 사라진다. 사람들의 눈도 냉철해진다.

이제는 차기 대통령의 취임전략이 분명해져야 한다. 개혁의 전략도 제시되어야 한다.

역시 대통령 취임의 「모양」이 아니라,그 「실속」이 문제다.<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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