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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는 경제전쟁(기술로 이긴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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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는 경제전쟁(기술로 이긴다:10)

입력
1993.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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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고 있는 자동화설비 수두록/현장 고려않고 도입해 뜯어고치기 일쑤/“우리실정맞는 설비확보·전문가 양성을”70년대 중반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기술인 시계바늘을 없앤 전자식 디지틀 시계를 개발했다. KIST는 이를 몇개 만들어 귀빈 선물용으로 청와대에 보냈고 청와대는 이 시계를 중동의 왕과 왕자들에게 자랑스럽게 선물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문이 날아왔다. 시계가 엉터리라는 것이었다. 국내에서 그토록 잘 맞던 시계가 위도의 차이때문에 우리나라와 자기현상이 다른 중동에서는 시계로서의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현장을 외면한 역구개발은 자주 이같은 벽에 부딪친다.

국내의 생산방식과 기술수준을 고려치 않고 무턱대고 외국의 선진설비를 들여왔다가 낭패를 당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현장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80년대 후반부터 임금이 치솟자 기업들은 인건비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동화설비를 도입했다. 그러나 비싼 돈을 들여 도입한 대부분의 자동화설비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먼지에 쌓인채 공장 한구석에서 놀고 있다.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설비이기 때문이다.

현대 정공은 80년대 후반부터 91년까지 1천5백억원을 들여 자동화시설을 갖췄다. 원료 투입 후 제품이 만들어져 창고에 저장되는 과정을 완전자동화한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현재 현대정공의 생산현장에서 자동화시스템이 활용되는 곳은 일부 라인뿐이다.

삼성전자는 30억원을 들여 기존 조립라인을 뜯어 고치고 있다. 자동화를 추진했던 라인이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결국 자동화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다가 도입한 자동화설비가 현장에서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자 생산라인 자체를 새로이 설치한 자동화설비에 맞도록 다시 고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자동화에 성공한 기업도 없지 않다. 고려합섬의 울산공장은 자동화이후 8백여명이 필요한 설비에 1백50명 정도만 투입하고 있으며 자동화 이후 연간 3백억원 이상의 원가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삼성물산의 에스에스패션 안양 공장의 경우 80%에 가까운 공장자동화를 실현,이탈리아 등 섬유선진국을 능가하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자동화란 원료투입에서 생산,운반,보관 등에 이르기까지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다. 기계설비의 관리까지 컴퓨터가 대신한다. 자동화시설을 갖추는데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성공적으로 운영만 하면 기대이상의 품질향상과 생산성향상을 달성할 수 있다.

일본 화낙사의 잠실 운동장만한 공장에서는 그야말로 사람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이 거대한 공장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은 고작 10명내외다. 화낙에는 이런 공장이 여럿 있다. 각공장의 한 해 매출액은 대략 3천억원으로 이익률은 36%나 된다.

도요타 공장에는 문이 없다. 모든 창문을 없애고 나나의 출입문만 남겨놓았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완벽한 자동화체제때문이다. 일본 후지쓰는 24시간 연속 가동하는 완전무인생산체제를 갖추고 1천가지나 되는 각기 다른 부품을 동시에 생산하고 있다.

자동화 관련산업의 국내기술수준은 걸음마 단계다. 앞에서 달리고 있는 선진기업들을 따라 잡기 위해서는 자동화 관련 산업의 기술수준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급한 것은 우리생산현장에 맞는 자동화 설비를 확보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자동화설비라 해도 이를 우리실정에 맞게 설치하고 가동할 줄 모르면 고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자동화설비 전문가가 없다.

일본에서는 대학과 산업현장 두 경로로 박사가 배출된다. 이중 산업현장의 박사는 학교를 졸업한 후한 기업에 들어가 자신의 생산라인에서 논문을 쓴다.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생산라인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등이 논문의 주제가 된다. 대학의 박사와 산업현장의 박사는 수시로 자신들의 연구분야를 놓고 토의,이 자리에서 발견된 문제점과 개선점은 바로 산업현장에 적용돼 생산기술을 한차원 끌어 올리는데 기여한다.

현장을 아는 기술자만이 현실에 맞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현장의 박사다.<이종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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