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주를 1류기술로 착각/신발산업 「세계 정상」 아직 멀었다/자동화 공정 개발해도 외면/아직도 인건비 따먹기 구태/“기술수준만 놓이면 승산 있는 종목”한때 신발왕국의 주인이었던 국내 신발업체들은 연쇄부도와 잇단 휴·폐업 등으로 빈사상태에 빠져있다. 최후의 보루였던 가죽운동화 시장에서까지 왕자자리를 빼앗기고도 반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생산단가에도 못미치는 출혈수출로 간신히 목숨만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손재주를 기술로 착각하고 안주한데서 비롯된 무서운 결과다. 불과 몇년전 『운동화는 역시 한국제』라며 국산운동화를 사려고 안달하던 외국 바이어들의 모습은 이미 아득한 옛일이 돼버렸다.
아직도 상당수의 신발업계 관계자들은 우리나라가 신발에 관한한 세계 정상의 기술과 품질을 보유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믿음은 착각이고 자만이었음이 속속드러나고 있다.
세계적인 신발브랜드인 미국 리복의 한국사무소 남상달소장은 『우리나라 운동화가 세계 최고라고 믿는 것은 착가이고 오해다. 소재개발에서 디자인과 상표,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외국회사것이다. 우리가 잘한다는 것은 고작 외국사람들이 주문한대로 조립을 잘한다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고 잘라말했다. 즉 한국은 최고품질의 최종제품을 만드는데 어느정도 기여할 뿐이라는 것이다. 주요 원자재에서부터 디자인,생산기계까지 외국것을 수입하지 않고선 신발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발산업에서 우리가 정확히 최고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단지 인력과 장소정도다. 종업원들의 제조기술이 뛰어나고 신발산업의 중심지인 부산일대에 관련산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87년이후 임금이 매년 14%가량씩 오르고 중국,인도네시아 등 후발개도국들이 맹추격 해오면서 이같은 강점마저 퇴색해버렸다. 손재주가 아닌 기술의 극복 없이는 후발개도국의 추격을 따돌릴 재간이 없다.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는 고유상표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기술이 뒤따라주지 않으니 세계적으로 성가를 얻을 수 있는 고유상표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손기술만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본격적인 기술개발에 과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다.
신발연구소도 이 바람에 제기능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 87년 설립이후 양한 신소재와 자동화공정을 어렵게 개발했지만 업계가 이를 외면하고 비싼 수입품을 선호하는 바람에 번번이 실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공동상표로 내놓은 「존신」은 3년째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돼 있는 실정이다.
민병권 신발연구소장은 『신발업계에 종사하는 기업인들이 아직도 신발은 노동집약산업이라는 맹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소재개발이나 새로운 공정개발,자동화 등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현재 신발업계의 자동화 설비보유율은 2.5%수준. 공정별 자동화율도 6.9%에 불과하다. 신발합리화자금 등 노후설비를 개체하기 위한 정책 자금의 이용도도 저조한 상태다. 이는 신발업계 스스로 신발산업이 인건비나 따먹는 업종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신발산업이 침체에 빠진 것은 신발산업이 사양산업이기 때문이 아니라 신발관련 기업인의 사고가 낡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탈리아가 우리나라보다 인건비가 더 비싸면서도 자동화로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예로 들었다.
(주)우연의 정철상사장은 『인건비가 경쟁국에 비해 터무니 없이 많이 들어가는게 틀림없다. 그러나 직원들의 기술수준이 높은 만큼 한단계 높은 기술을 개발해내 생산성을 높일수만 있다면 신발산업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최근 신발은 가볍고 착화감이 좋고 패션까지 살린 질기며 피로가 덜한 인체공학적인 제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국내신발기업들도 이에 걸맞는 기술의 개발은 물론 일손이 많이 들어가는 공정의 자동화를 적극 추진,신발산업 자체를 노동집약산업이 아닌 기술집약산업으로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일치된 지적이다.<김경철기자>김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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