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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를 끝내며… 전문가 4인 좌담회(대학을 살리자:4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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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를 끝내며… 전문가 4인 좌담회(대학을 살리자:44·끝)

입력
1993.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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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비 「교육개혁」 서두를 때다”/학과 지나친 세분보다 「전문화」 역점/교수도 대폭 확충… 학문경쟁 유도를/정부서는 시설투자­연구활동 지원 과감히… 기초과학분야 활성화 도와줘야한국일보사는 92년 2월27일부터 지난 7일까지 매주 목요일자에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을 진단하고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연중기획 「대학을 살리자」를 집중취재 보도해 왔습니다.

이 특집시리즈는 그동안 대학은 물론 일반사회에도 폭넓은 반향을 일으켰으며 여기에서 지적된 많은 사항들이 교육정책에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44회로 시리즈를 마치면서 교육전문가들의 좌담을 싣습니다.<편집자 주>

□참석자

▲정범모 한림대총장

▲백충현 서울대 교무처장

▲이성호 연세대 학생처장

▲모영기 교육부 대학정책실장

▲사회 설희권 사회부차장

▲정리 김현수기자

▲사회=21세기를 앞두고 선진국의 대학들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해 연구실의 불을 한층 밝히고 있습니다.

한국대학의 현주소와 문제점에 대해 먼저 논의해 주십시오.

▲정범모 한림대총장=우리나라 대학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일종의 「이완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학문의 기준,학문의 규율은 물론 학문적 생산까지 심각할 정도로 이완돼있습니다. 세계가 지금 무역전쟁보다 더 무서운 정보·지식전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데 우리나라 대학은 무방비상태입니다. 대학이 서둘러 학문의 표준체계를 세우고 규율을 잡아 왕성하게 생산활동을 해 나가야 사회전체가 선진국문턱에 진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성호 연세대 학생처장=대학의 주된 기능은 뭐니뭐니해도 연구와 교육이며 최고의 지성과 샘솟는 창조적 사고의 산실이 바로 대학입니다.

한국대학은 이같은 관점에서 보면 우물안 개구리와 같이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오히려 사회의 발전속도에 뒤처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학의 총체적 위기는 점점 높아가는 대학에 대한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데서부터 출발합니다.

▲=백충현 서울대 교무처장=우리나라 대학은 광복 이후 이제까지 양적으로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성장은 대학 스스로 준비하고 설정한 기준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사회의 변화와 요구에 수동적으로 말려들어간 결과라는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대학원중심 대학육성이나 대학교육의 정상화 방안에 대한 논의도 양적팽창의 와중에서 소홀히 취급돼온 대학의 질적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시도라고 봐야지요.

대학의 질적향상과 관련,앞으로 대학 스스로 사회의 발전과 변화추세를 진단하고 평가해 교과과정 등 학문체계의 기준을 재편성하는 과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영기 교육부 대학정책실장=우선 대학이 내부적으로 경쟁체제를 갖춰야 합니다. 학생들끼리,교수들간에 경쟁이 없는 대학에서 질적향상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탄력성 있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예컨대 대학이 새로운 학문도입과 학과 설립에 애를 먹고 있는 원인도 기존의 교수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느라 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내부의 리더십이 위협받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정부로부터 상당할 정도의 자율성을 부여받고 있으면서도 대학본부의 리더십이 약해 이른바 「조직화된 진공상태」에 빠지곤 합니다.

대학본부보다는 개별학과의 입김이 너무 세 목표를 통합적으로 세워 추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지요.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총장의 권한이 외국에 비해 작다는 점을 들수 있겠습니다.

10∼20년을 재직하는 외국총장에 비해 우리나라 대학총장들은 임기 4년을 채우는 것이 고작입니다.

이같이 약해진 리더십을 보강하지 않고는 대학의 발전을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사회=이제부터 대학의 연구여건 등 각론으로 들어가지요.

○강사의존 줄여야

▲이 교수=교수의 역할은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교수가 이 두가지 일을 똑같이 해내야 한다는 발상은 잘못된 것입니다. 가르치는 일에 열성적인 교수도 있어야 하고 연구에 주력하는 교수도 있어야 합니다. 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구에 치중하는 대학이 있으면 사회가 요구하는 교양인을 육성하는 데 힘쓰는 대학도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대학간에 역할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정부가 대학을 과잉보호해 온 측면도 있습니다. 간판만 달면 일률적으로 머리수에 따라 지원해줬기 때문에 대학으로 하여금 자구력을 키우기 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었다는 얘기지요.

미국의 경우 대학에서 산출되는 연구업적의 90%가 전체교수의 10%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나머지 90%의 교수들은 연구보다는 가르치는 일에 치중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요.

우리나라 대학들은 툭하면 연구비 부족이나 열악한 시설을 연구장애요인으로 꼽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면 타당한 주장이지만 그보다는 제한된 인적,물적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를 우선 검토해 봐야 합니다.

최근 국내교수 1천2백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교수들은 연구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강의부담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교수확보율이 매우 낮아 시간강사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그러나 강의부담이 커지게 된 중요한 이유은 무분별한 강좌개설이라고 봅니다.

적정한 강좌수를 산출하기보다는 주먹구구식으로 강좌를 개설함으로써 불필요한 강의부담을 안겨주게 됐다는 것입니다.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경영기법이 대학에서도 필요하게 됐습니다. 대학의 연구기능 활성화와 관련해서는 기초연구와 개발연구 중 어디에 비중을 두어야 할 지를 우선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연구에만 몰두하는 교수라면 구태여 대학에 있기 보다는 기업부설 연구소에서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대학의 연구활동이 기초과학 보다 응용연구분야에 편중되어 있는 현실도 시급히 개선해야 합니다.

▲백 교수=대학의 연구여건을 말하기전에 학문체계부터 짚고 넘어가야 하지않을까요. 서울대의 경우 현재 1백5개의 학과가 개설돼 있고 전공과목까지 합치면 1백20개로 세분화돼 있습니다. 문제는 이같은 전공의 세분화가 거꾸로 되어있다는 점입니다. 학부과정은 전공이 세분화돼 있으나 박사과정으로 올라갈수록 통합되는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지요.

전공세분화는 역피라미드꼴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학문체계부터 바로잡은 뒤 교과과정을 개선해 나가야 연구여건도 개선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양과목과 전공과목간의 체계를 정립하고 전공과목간에도 종적인 체계를 세우는 재편작업을 서둘러야 합니다.

대학이 학문체계를 바로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대학부설연구소는 제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마치 기업부설연구소처럼 운영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원해주는 기업의 요구에 따라 연구테마가 결정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대학본연의 교육과 연구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학문체계를 바로 세워놓은 연후에 이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연구소를 재편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사수급 조절을

▲모 실장=현재 전국 1백42개 4년제대학 중 박사과정을 두고 있는 대학이 무려 82개교나 됩니다. 엄밀히 따져보면 전체대학 가운데 박사과정 개설요건을 갖춘 대학은 10∼20%에 못미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전체 3천여개의 대학중 석사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이 7백여개,박사학위까지 수여하는 대학은 30여개에 불과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박사과정이 얼마나 인플레 되어있나를 알 수 있습니다.

이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대학원설치 기준령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기준령에 맞지 않는 대학원의 설치는 불허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입니다.

대학이 기초과학연구를 하려해도 재원확보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교육부 지원금은 기초과학 연구에 중점적으로 사용하고 과기처지원금은 대형프로젝트나 응용과학연구에 할당하며 상공부 동자부 등의 지원금은 생산과 직결되는 기술연구에 충당하도록 교통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정 총장=그 동안 대학의 연구는 주로 경제개발과 맞물려 진행돼 왔습니다. 그러나 대학본연의 사명은 학생을 훌륭한 인재로 양성하는 것입니다.

교수개인으로는 연구와 교육기능을 새의 양날개처럼 겸비해야 하지만 대학전체를 보아서는 교육이 연구보다 중요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대학에 연구소라는 조직이 있으면 나쁠게 없지만 그 연구소가 학생과 유리된 것이라면 구태여 대학내에 둘 필요가 없습니다.

연구가 최상의 교육방법이라는 인식없이 단지 교수들이 업적 쌓는 방편으로만 이루어진다면 본말이 전도된다는 것이지요.

앞에서 이 교수도 지적했듯이 연구행정체계도 이같은 맥락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자연과학이나 인문과학이나 참된 연구는 연구소와 같은 조직보다는 개인의 두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소에서 이루어지는 조직화된 연구는 응용이나 상업화에는 성과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류역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는 집단적사고 보다는 개인의 번뜩이는 영감에서 창출되는 경우가 휠씬 많을 것입니다. 개인의 두뇌를 최대한도로 활용해 첨단학문을 개척하겠다는 풍토가 조성돼야 진정한 의미의 연구활동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 교수=교육부가 교수승진이나 업적을 계량적인 연구실적에만 근거해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아무리 학생들을 잘 가르쳐도 인정해 주지않고 강의는 못하면서도 연구실적만 많으면 평가해주는 풍토에서는 교육의 질 뿐만 아니라 연구의 질 또한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모 실장=교육부가 교수들을 평가한다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교수들의 강의를 평가하기는 쉬운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강의능력보다는 연구실적에 주안점을 두어 평가하고 이 또한 연구의 질보다는 논문의 편수 등 양적인 평가에 그치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사회=학생들에 의한 교수강의평가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 실장=한국적 풍토에서는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결국 각 대학에서 나름대로 평가기준을 만들어 시행하는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강의평가제 일러

▲정 총장=미국의 경우 65년 중반부터 교수강의평가제를 도입해 현재는 그 결과를 교수인사에 반영하는 대학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사제관에 비추어 볼때 거부감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요. 교수 스스로 자기성찰과 수업방식 개선을 위한 참고자료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백 교수=현재 서울대의 경우 교수평가를 위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피교육자인 학생들에 의한 평가는 절대 고려될 수 없습니다.

교수평가방안은 세가지에 비중을 두고 있지요. 서울대는 우선 교수각자의 전공분야에 따라 연구업적을 평가하고 전공과 관련없이 모든 교수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강의업적을 평가하려 합니다.

보직교수들의 대학교육 전반에 걸친 기여도 평가도 병행해 나갈 방침입니다.

▲이 교수=미국에서 학생들에 의한 강의평가제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중반 소비자 권익신장운동이 최고조에 달하던 때였습니다.

학생들도 수업료를 낸만큼 교수들에게 충실한 강의를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지요. 이같은 시대적 배경이나 사회,문화적인 차이를 고려할때 우리나라의 경우 학생들에 의한 강의평가제는 무리가 많다는데 동감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교수의 강의를 평가하느냐의 문제가 제기되는데 개인적으로는 동료교수나 선배교수가 조언을 해주는 차원에서 신중하게 평가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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