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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품 동남아선 진열도 힘들어(경제전쟁의 현장:7·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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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품 동남아선 진열도 힘들어(경제전쟁의 현장:7·끝)

입력
1993.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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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 약화·유통망 전무상태/전략상품 개발·시장홍보 시급【싱가포르=최해운특파원】 「윈도 마킷」 또는 「쇼윈도」로 불리는 싱가포르. 작은 도시국가이지만 이 시장이 지니는 중요성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하면 삼성 금성 등 우리나라 기업의 컬러TV 비디오 컴퓨터 제품을 선전하는 간판이 일본제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 유명백화점의 전자 가전제품 매장에는 정작 이들 한국산 제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한참 눈여겨 봐야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자리에 현란한 일제나 유럽제품과는 달리 화면이 꺼진채 외롭게 잠자고 있는 「SAMSUNG」 「GOLDSTAR」 상표의 컬러TV와 만난다. 그것마저도 14인치 소형 1∼2대 정도이고 최첨단을 달리는 일본제품에 비하면 초라한 구형이다. 한국제품이 세계 윈도 마킷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략해 있는 서글프고 분통터지는 현장이다.

한국산 비디오,오디오,가라오케 세트,컴퓨터 제품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1년전만해도 가끔 눈에 띄었으나 요즘은 한마디로 전멸상태다. 근본적으로는 품질과 가격면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설사 경쟁력이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현상인지 모른다.

소고 요한 다이마루 등 싱가포르의 주요 백화점이 모두 일본 자본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한 한국제품이 싱가포르 시장을 파고 들기란 극히 어렵다.

여러면에서 일본제품에 비해 뒤떨어지는 한국제품을 일본백화점이 애써 팔아줄리가 없다. 이들 백화점은 한국제품을 눈에 잘 띄는 진열대에 진열해주도록 요청하면 『자리가 없다』고 고개를 젖는다고 한다. 그래서 후미진 곳에라도 올려놓으려면 경품추첨을 이유로 상당액의 현금을 요구한다. 더욱이 진열제품을 판매가의 50%에 납품하라는 등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놓아 구조적으로 우리 제품이 발붙이기 어렵게 만든다. 한 종합상사 주재원은 『우리 재벌들도 국내 부동산에만 투자하지 말고 해외에도 눈을 돌려 이곳에도 우리 자본의 백화점 1∼2개라도 있었으면 어느정도 팔 수 있겠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물론 우리 제품이 시장에서 급격히 밀려나는 것은 품질 가격 디자인 마케팅 홍보 등 모든 전략에서 뒤떨어지고 있는 총체적 결과다. 컬러TV의 경우를 보자.

갈수록 새로운 기술에 의해 새로운 품질의 컬러TV를 선보이고 있는 일본제품에 비해 한국 TV는 품질면에서 크게 떨어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29인치 이상의 제품은 품질의 차이가 커 아예 시장에 내놓지도 못한다. 세계 각국의 컬러TV 방송시스템이 달라 동남아의 PAL시스템 상품의 공장라인을 신속하게 만들지도 못한데다 지역별 위치에 따라 지구의 자장이 성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 등을 소홀히 해 첫눈에도 화면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G사는 작년 동남아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싱가포르에 29인치 컬러TV를 내놓았다가 품질로 도저히 경쟁이 안돼 끝내 거두어 들이고 말았다. 이 제품은 유럽시장에 팔기위해 생산한 것인데 적도에 위치한 싱가포르지역에선 지구 자장의 영향으로 스크린 구석부분의 컬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결정적인 결점이 발견된 것이다. 품질뿐 아니라 가격면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소니 파나소닉 히타치 아이와 등 일본 전자회사들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주변국에 조립공장을 세워 제품을 생산,우회적으로 시장에 쏟아붓고 있다. 소비자들은 어느나라에서 만들었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무조건 일본상표를 선택한다. 우리 제품은 이처럼 싼 인건비에 운송료도 적게 든 일본제품과 가격경쟁에서 뒤떨어질 수 밖에 없다. 우리 기업들은 마치 우리 제품이 일본제품의 아류로 인식되기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선전해왔으나 이것 역시 실패했다. 소비자들은 일본제품들속에 묻혀있는 한국제품을 용케도 구별해내고 있는 것이다.

시장 홍보전략도 최근에는 달라지고 있다. 옛날에는 기업 이름만 내세우고 생산되는 품목위주로 선전했으나 요즈음은 「SONY NICAM,KIRARA BASSO CTV」 등과 같이 자기 회사의 최신 기술이나 제품의 모델명을 세분화 전문화시킨 광고 선전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우리 제품이 뚜렷이 앞서가는 기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기업과 제품 이름만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제품이 동남아시장에서 아무리 높은 장벽과 난관에 부딪치고 있다해도 노력만하면 뚫고 들어갈 구석은 있다. 대표적인 예가 냉장고이다. 금성냉장고는 싱가포르에서 단일품목으로는 일본 기업과 1∼2위를 다투고 있다.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은 컬러TV와는 달리 품질면에서 일본제품을 따라붙고 있는데다 디자인도 별로 뒤지지 않아 이들 품목을 전략상품으로 선정,집중적으로 파고든 결과다. 그래서 냉장고만은 일본제품에 비해 다소 싼 가격에 내놓아도 그런대로 잘 팔린다. 지역시장의 특성과 환경에 따라 전략상품을 구체화시켜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인구 3백만도 안되는 조그만 싱가포르 가정의 90% 이상이 컬러TV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모두 갖추고 있어 기껏해야 대체 수요밖에 없는 이곳에서 일본제품간의 경쟁은 불꽃을 튀긴다. 매년 5백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쇼핑을 하고 있는 수출전선의 최전방이기 때문이다. 이곳 윈도 마킷에서 성공해야 세계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일본 회사들은 그래서 일본시장과 거의 동시에 신제품을 싱가포르 시장에 앞다투어 선보이고 있다. 우리 수출전선에도 어떤 어려움을 뚫고라도 이곳에 파고 들어야 한다는 지상명령이 내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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