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상급 「가전」 실속이 없다/거액 로열티에 기술 베끼기 급급/독자 개발없이 복제품만 양산/후발국 맹추격에 성장도 둔화/“연구 개발 투자 획기적으로 늘려야”우리나라 가전메이커들이 만들지 못하는 가전제품은 별로 없다.
세계적인 첨단제품들을 거의 다 만들어 내수공급도 하고 수출도 꽤 하고 있다. 아직까지 많은 국가들이 업두도 못내고 있는 8㎜ 캠코더는 물론이고 최근 선진국에서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시네마TV(일명 횡장TV)도 개발,곧 시중에 선보일 예정이다. 콤팩트 디스크 플레이어(CDP)·레이저 디스크 플레이어(LDP) 등 첨단 AV(오디오 비디오)기기도 재빠르게 만들어 내고 있다. 퍼스컴 기능에다 TV,오디오,전화,팩스기능 등을 결합시켜 가전의 총합체로 세계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CDI(Compact Disk Interactive)도 지난해 부터 상품화에 성공,일부 국내 업체들이 본격 출하에 나서고 있고 순식간에 전세계적인 대체수요를 불러 일으킬 차세대 HD TV(고선명 TV)도 1∼2년내 제품개발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표상으로도 우리 가전 산업은 세계수준에 올라 있다. 전자공업 진흥회 등 관련기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가전업체들의 총생산규모는 1백6억달러(추정치)에 달해 미국·독일을 누르고 일본(90년 기준 생산액 3백83억달러)에 이어 세계 2위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수출액도 지난해 61억2천만달러(추정치)에 달해 세계 2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는 우리 가전산업의 앞면과 외형만을 본 것이다. 속과 내용을 들여다 보면 한국의 가전산업이 세계 정상급이라는 평가는 난센스가 아닐수 없다.
국내 가전업체들이 세계 최첨단 제품들을 거의 빠짐없이 생산해 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 제품들의 원조는 한결같이 외국 메이커들이다. 개발된 기술을 거액을 주고 송두리째 사오거나 원용해서 만든 「복제품」에 지나지 않는다.
8㎜ 캠코더만 해도 일본 소니사가 지난 89년 최초로 개발해 낸 것을 우리는 3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만들어 냈고,CDI도 네덜란드의 필립스사가 91년 첫선을 보이자 국내 가전메이커들이 「큰일 났다」싶어 부랴부랴 외국기술을 도입해 유사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오디오 분야에서도 필립스·소니 등이 일찌감치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틀 방식을 채택,DCC(디지틀 콤팩트 카셋),MD(미니디스크) 등을 개발해 세계시장을 주도해 나가자 국내 가전업체들이 엄청난 로열티를 주고 지난해 부터 제품개발을 착수했다. 시네마TV 역시 프랑스의 톰슨사가 91년 처음으로 개발한 것이다.
한마디로 원천기술을 개발해낸 것 하나 없이 남이 만든 제품을 흉내내고 베끼기에 벅찬 것이 우리 가전산업의 현주소다. 선진외국업체들이 첨단 기술과 이를 바탕으로 개발한 신제품의 로열티 수입만으로도 충분한 채산성을 맞추면서 세계가 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 가전업계는 남의 기술을 얻어다 값싼 중저급제품을 대량생산 하는 물량 작전을 펴다보니 기술 선진국의 뒤꽁무니만 쫓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는 조립기술에서 조차 일본의 80%수준으로 밀려 났다.
이 정도의 입지도 수년새 인건비 상승,중국 및 동남아 개도국들의 맹추격으로 큰 위협을 받고 있다. 89년이전까지만 해도 생산·수출에서 연평균 25%의 성장세를 보였던 국내 가전산업이 이후 성장률이 급감,지난해에는 총생산액이 줄어들었다.
이같은 가전산업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결국 부단한 기술개발에 의한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밖에 없다. 업계전문가들은 이와관련,연구 개발투자의 획기적인 증대가 관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 도시바의 경우 지난해 연구개발에 무려 2천9백억엔(한화 1조8천여억원)을 투자했다. 이 규모는 삼성전자의 연구 개발비(4천7백억원)의 4배에 해당되는 것이다. 선두자리는 그만큼 피나는 노력과 투자를 하는 기업만이 차지할수 있다는 뜻이다. 독자개발은 엄두도 안내고 남의 것이나 베껴먹으려는 자세로는 언제 후발개도국에 추월당할지 모른다.<송태권기자>송태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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