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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정치를 잊는 정치 펴도록”/법정스님 신년인터뷰(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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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정치를 잊는 정치 펴도록”/법정스님 신년인터뷰(초대석)

입력
1993.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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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통령 야당시절 체험 꼭 기억/호남몰표 “지역감정” 매도 말아야/김대중씨 경륜 국민위해 헌신 바람직… 빗나간 종교열은 오히려 사회파괴□법정스님 연보

▲전남 해남출생

▲전남대 철학과 졸업

▲해인사 학원 수료

▲해인사 학원 중강

▲보조사상 연구원장

▲송광사스님

▲저서 「영원의 모음」 「무소유」 「말과 침묵」 등이 있음

▼1993년 새해는 32년만에 문민시대가 열리는 뜻깊은 해입니다. 2월에는 대통령 이취임식이 있고 새정부가 나라를 이끌게 됩니다. 스님께서 생각하시는 문민시대란 어떤 시대입니까.

『국민이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정부로부터 억압당하지 않고,제도적인 부패에 좌절하지 않고,각자의 영역에서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살아가는 시대가 문민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 국민은 정부와 제도에 대항해 싸우느라고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습니다. 학생과 근로자와 지식인과 종교인들이 각자 자기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그것이 모여서 도도한 민족적 에너지를 이루는 세상이 참다운 문민세상입니다. 대통령이 군인출신이냐 민간인 출신이냐는 이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국민이 정치를 잊어버리고,권력을 증오하지 않고,자신의 분야에서 삶의 의미와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대통령이 바로 문민대통령입니다. 정치가 새로워지지 못하고,문민시대를 맞는 국민의 높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국민의 에너지가 다시 분산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문민시대를 경축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참된 문민시대

▼김영삼 차기 대통령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앞에서 말한 문민대통령의 역할을 다하는 것 이외에 개끗한 정치,화합의 정치,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펴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오랜 야당시절에 체험했던 권력의 여러 얼굴을 잊지않는다면 권력을 함부로 쓰지않고,국민의 간절한 염원을 져버리지 않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호남인 포용해야

▼지난 대선에서도 지역감정이 심각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김대중후보에게 90% 이상의 몰표를 주었던 호남의 정서를 단순한 지역감정으로 매도하는한 이 문제는 풀리지 않으리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닭이 먼저냐,달걀이 먼저냐하는 이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대중후보를 찍은 호남사람의 지역감정과 김영삼후보를 찍은 영남사람의 지역감정을 같은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얼마나 한이 깊고,피해의식이 절박했기에 90%가 넘는 몰표가 나왔을까라는 관점에서 호남의 지역감정을 봐야합니다. 민자당의 출범 자체가 내용적으로는 호남을 제외한 3당 통합이라는 면이 있었고,그때 호남인들의 소외감은 일종의 위기의식으로 다가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호남인들에게 김대중씨는 호남의 소외와 불균형을 바로 잡아주리라고 기대되는 유일한 후보였습니다. 지역발전이나 인사문제 등에서 호남이 어떤 불이익을 당해왔는지를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지역감정과 피해에서 벗어나려는 지역감정을 똑같이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호남에서 김대중씨에게 90% 이상의 몰표를 주니 다른지역에서 김대중씨를 안찍는게 아니냐,당신들이 먼저 지역감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리가 있을지 모르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충고입니다. 김영삼 대통령당선자는 김대중씨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호남인들의 변화에 대한 갈망을 깊이 새기고,호남인들의 좌절을 포용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 배타성 지양

▼지난 대선에서는 각 종교의 배타적인 선거운동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난스런 종교열풍이 기대하는 만큼 사회정화에 기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리나라에는 지금 여러종교가 번창하고 있는데,그 종교들의 공통점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실천,자비의 실천이 모든 신앙인의 일차적인 사명이고,또 종교를 갖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종교가 일단 조직된 힘을 가지면 배타성과 집단이기주의가 생겨 종교의 본질과 거리가 멀어지기 쉽습니다. 각 종교는 늘 이 점을 스스로 경계하고,신앙인들은 내가 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냉철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저마다 삶의 현장에서 이웃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종교인의 바른 현실참여입니다. 종교인의 뜨거운 신앙은 내면으로 심화돼야지 겉으로 요란하게 드러나서는 안됩니다. 내면으로 심화되지 못한 종교열은 폭력이 될 수도 있고,파괴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종교인들은 다른 종교를 자기 종교의 잣대로 재려해서는 안되며,자신의 종교로부터도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종교없이도 사랑을 실천하며 바르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종교가 바라는 바입니다. 종교에 얽매여 종교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고,인간과 세상의 다른 영역을 사장시켜서는 안됩니다. 우리 사회에 종교열풍이 뜨겁게 부는데도 사람과 사람 사이가 따뜻해지지 못하고,날로 살벌해지는 것은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적기 때문입니다. 바르지 못한 종교열은 오히려 사회를 파괴한다는 점을 우려해야 합니다. 청와대에서 찬송가 소리나 목탁소리가 울려퍼지게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배타적이고 반종교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통일은 고통수반

▼남북통일을 위해서 어떤 제안을 하시겠습니까.

『세계를 내다보면 이제 이념대결이란 흘러간 물이 되었고,온세계가 좀더 잘 살기 위해 무섭게 경쟁하고 있는데,우리만이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옥신각신하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언제 어떻게 통일이 되든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남한사람들이 북한 동포를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고 양보해야 하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통일을 위해 치러야할 대가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지역감정조차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가진 사람들은 이기주의에 빠져있고,못가진 사람들은 가진 사람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우리끼리도 하나가 되지 못하면서 어떻게 반세기동안 다른 체제속에 살아온 북한사람들과 하나가 되겠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형제들인데,우리가 그들을 기꺼이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새로 출범할 정부는 각 지역,각 계층,각 집단 사이의 갈등 해소야말로 가장 중요한 통일준비라는 인식을 해야 합니다. 남한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튼튼해지지 못하면 어느날 갑자기 통일이 온다해도 갈등과 혼란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통일의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우리는 실질적인 준비를 서둘러야 합니다. 정부는 통일이 무지개 및 희망인 동시에 고통을 수반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점을 국민에게 알리고 준비시켜야 할 것입니다』

○심기일전할 때

▼정계은퇴를 선언한 김대중씨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그의 은퇴선언은 감동적이었습니다. 무엇이 되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에 관심을 갖고 살아왔다는 그의 말은 인생에서 참다운 승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한 인물이란 그 시대의 기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룩되는 산물입니다. 그는 자신이 몸으로 역사와 부딪치며 쌓아온 체험과 경륜을 사회에 되돌려야 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형태로든 국민운동에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새해를 맞는 사람들에게 좋은 말씀을 들려주십시오.

『불교의 세계에는 묵은 해도 없고 새해도 없습니다. 매일매일은 늘 새로운 날입니다. 수행자들은 늘 새로워지기 위해서 사흘에 한번씩 삭발을 하는 것입니다. 인습적으로 한해가 바뀌면,나이든 사람들은 앞으로 살아갈 나이가 한살씩 줄어든다고 느끼고,어린 사람들은 앞에 펼쳐진 나이가 한살씩 늘어나는 것처럼 느끼지만,육신의 나이에 집착하지 말고 매일매일 심기일전해야 합니다. 특히 올해는 정부가 바뀌는 뜻깊은 해이니 모두가 의식을 전환하여 정부와 국민이 함께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각오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영삼 차기 대통령은 그를 지지한 42%의 대통령이 아니고,우리 모두의 대통령이므로 온국민이 그의 따뜻한 협력자가 되고 살아있는 감시자가 돼야 할 것입니다』<대담 장명수 편집국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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