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비없고 정원재학년수 “무제한”/수업방식 철저한 세미나식실습 위주/교수·학생 “공부 안하면 탈락” 경쟁치열/장학금 되도록 골고루 혜택… 성적에 관계없이 주기도【베를린=강병태특파원】 독일의 대학교육은 철저한 국가책임아래 무료로 이뤄진다.
대학문은 활짝 열려있고 학생선발에서부터 학사운영에 이르기까지 독일특유의 자율과 자치원칙에 충실하고 있어 교육이 국가백년대계라는 명제가 실감난다. 대학교육을 국가가 책임지지만 통제나 간섭,지도가 없다.
교육체계가 어느나라보다 개방적이고 민주적이다. 대학진학 여부가 어릴때 일찍 결정나버리기 때문에 입시자체가 과열될 수가 없다. 국민학교 4학년 정도에서 학업능력과 적성 등을 평가,일반중등학교인 김나지움(Gymnasium)이나 실업학교로 방향을 정한다. 김나지움 졸업때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아비투어(Abitur)에 합격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아비투어는 대학수용능력이나 국가의 인력양성계획 등에 따라 적정인원을 가려내는 시험이 아니다.
일부 주는 공동시험제이지만 통상 김나지움 자체시험으로 최고 1점에서부터 최하 5점까지의 평점을 부여하는데 5점만 불합격이다.
따라서 아비투어를 통과하는 학생수는 대학진학 희망자 수와 이들의 학업능력에 따라 해마다 달라진다.
독일대학에는 원칙적으로 입학정원과 틀에 박힌 입시제도 자체가 없기 때문에 아비투어에 합격하기만 하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얼마든지 진학할 수 있다. 실업학교 학생들도 별도의 아비투어시험을 거치면 전문대학에 갈 수 있다.
최근에는 취업후에도 일정한 경력과 전문지식을 갖추면 일반대학에 다시 진학할 수 있는 제도까지 도입했다.
60년께까지는 아비투어 획득률이 전체 학생수의 5% 수준이었으나 70년대 이후 급격히 증가,현재는 30% 정도이다.
아비투어통과자의 증가와 함께 대학신입생수가 75년 16만여명에서 현재는 30만명선으로 늘었다.
대학이 이처럼 팽창하자 일부 주에서는 입학정원을 정해 입시를 치르려는 움직임이 일기도했다.
그러나 독일헌법재판소는 『대학이 일정 인원만을 선별하는 것은 자유로운 인격함양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정신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실험실습이 많거나 지원학생이 집중되는 학과에 한해서는 입학인원을 제한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따라 의학 약학 생물 식품 건축 경영 경제학과 등 전체학과의 3분의 1 정도는 입학심사제를 도입하고 있으며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정부 간섭 안해◁
입학심사는 연방대학배정센터(ZVS)에서 대학수용능력과 지원자의 아비투어 성적 등을 토대로 입학허용 여부를 결정한다.
첫해에 실패해도 1∼2년 기다리면 입학이 되기도 한다.
독일대학의 또다른 특징은 재학기간,학년,이수연한 등이 없다는 점이다. 다만 학사과정에 해당하는 디플롬 전과정(Vor diplom)과 석사과정인 디플롬 또는 마기스터(Magister)과정으로만 구분된다.
디플롬 전과정은 보통 2∼3년,디플롬은 3∼4년이 소요되지만 도중에라도 디플롬시험에 합격하고 논문이 통과되면 졸업한다.
학위는 석사이고 학사학위는 없다.
입학이 자유롭고 재학연수에 제한이 없다고 해서 강의나 학업자체가 느슨한 것은 아니다.
강의는 어느 선진국 못지않게 세미나,토론,실험실습 등 실질적인 교육위주로 밀도있게 이루어진다.
특히 교수들은 연구업적에 따라 직급을 달리해 채용되는 등 실력위주로 엄격히 평가되기 때문에 교육의 질이 상당히 높다.
교수들이 부단히 연구하는 것은 쉴새없이 저서를 발간할 뿐 아니라 거의 매년 개정판을 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권위있는 교수들이 동료교수의 세미나에 참석,학생 옆자리에 앉아 경청하는 모습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독일의 대학풍토이다. 학업을 철저하게 학생 개개인의 자율에 맡긴다. 분야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정해진 과목을 알아서 수강하고 수시로 보는 필기 및 구두시험에 응해야 한다. 과정을 모두 이수한 다음 원할 경우 디플롬시험을 신청해서 응시한다. 필기시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영학 등의 디플롬은 4∼5개 과목을 과목당 5시간에 걸쳐 15매 분량의 논문식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 간단한 것 같지만 이 시험을 위해 대부분 2년 정도 준비한다. 기본교과서는 과목당 5∼15권 정도이나 수강과 세미나 준비를 위해 복사해야 하는 최신논문,저널 등의 분량이 2천∼3천 페이지에 달해 10㎝ 두께의 파일로 5∼10개나 된다.
▷유흥시설 전무◁
디플롬시험은 과목마다 두번의 응시기회를 주지만 두번 모두 불합격하면 영원히 해당학과를 졸업할 수 없어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디플롬시험의 1차 불합격률은 20∼40%선,최종탈락률은 25% 정도이다. 이 때문에 최종응시를 미루는 학생들이 많아 평균재학기간 12학기(6년)를 초과하는 경우가 15%를 웃돌고 10년 이상 재학하는 학생도 드물지 않다. 독일의 대학은 국가기관이다. 따라서 시설비 등 모든 대학예산은 연방정부와 각 주가 절반씩 부담한다. 학생들은 매년 30마르크(1마르크=4백76원) 정도의 학생회비만 내면 된다. 연방정부와 각 주는 연간 전체 재정지출의 4%선인 3백억마르크(약 15조원)을 대학교육에 투자한다. 대학생의 3분의 1은 연방교육 지원법에 의해 대여장학금을 받는다. 이 장학금 지급대상은 학업성적과 관계없이 부모의 능력정도,부양가족수 등 학생의 형편에 따라 액수를 달리해 정해진다.
최고한도액은 월 9백40마르크인데 독신학생의 월 평균생활비가 1천마르크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대여장학금은 생활비의 큰 몫을 커버한다. 졸업후 상환비율도 형편에 따라 달라 상환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 많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의 종류와 액수는 오히려 적어 전국적으로 1만여명이 혜택을 받을 정도이다.
독일사회 전체가 근면하고 검소하기도 하지만 대학생들에게는 사치나 유흥에 한눈을 팔 경제적 여유나 시간이 없다. 17∼18세에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학생들은 장학금만으로는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위해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뮌헨대학과 함께 학생수 6만여명으로 독일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베를린 자유대학의 건물들이 산재해 있는 거리에는 슈퍼,잡화점,맥주와 간단한 식음료를 파는 식당,약국,이발소 등이 군데군데 있을 뿐 유흥오락시설은 1곳도 없다. 독일 대학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대학생수가 적정수용능력의 2배나 된다는 점이다.
이같은 이유로 연방정부와 주간에 시설확충비 등 재정부담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가 하면 재학연수를 제한하고 12학기이상 재학하는 학생에게는 수업료를 징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학계에서는 현재와 같은 제도적 골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특히 정부는 21세기 하이테크경쟁시대에 대비하려면 현재 취업인력의 12%인 대졸 전문인력을 오히려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콜 총리가 대학의 수업료 징수문제와 관련,『수업료를 징수하겠다는 발상은 반사회적』이라고 한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내가 본 독일대학/실험실 늘 개방… 조교가 개인지도/졸업생중 95% 박사과정에 진학
독일 대학생들은 거의 모든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능동적으로 지식습득에 임한다. 원칙적으로 정원이 없고 재학연수를 제한하지 않아 학생자신이 여름학기나 겨울학기 중 편리한 때를 택해 입학한다.
베를린자유대 화학과의 경우 수강신청과 출석점검이 없다.
필수 및 선택과목을 각자 알아서 수강하고 과목별로 필기시험 성적표만 관리하면 된다.
디플롬 전과정의 최종구두시험이나 디플롬과정의 과목별 구두시험도 학생자신이 준비가 됐다고 판단할 때 교수에게 신청해서 시험을 본다.
실험은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며 각자 편리한 시간에 항상 개방돼 있는 실험실을 이용한다. 실험계획 또는 일정도 각자가 능력과 형편에 따라 조정한다. 지도교수는 학기초에 한번 안전수칙 등을 일러주고 나머지는 조교가 실험시간에 참여해 1대1로 지도한다.
수업형식은 대부분 세미나식이며 인문계의 경우 세미나수업이 훨씬 많다.
유급조교가 배치된 실험실에서 각종 기자재와 재료 등을 이용해 개인별로 실험실습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교육환경은 한국유학생으로서 부럽기 짝이 없었다.
화학과는 학부생이 3백50명,박사과정이 1백60명인데 정교수만 36명이나 된다. 박사과정의 80%는 실험조교 또는 연구조교로 일하면서 매달 1천7백∼3천5백 마르크를 받고 나머지는 독일연구재단(DFG) 장학생으로 월 1천4백마르크씩 지급받아 연구에 매진할 수 있다.
독일이 고학력사회이기도 하지만 이같이 연구여건과 교육환경이 좋아 학부졸업생의 95%가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있다.<안삼영씨·30·여·베를린자유대 화학과 박사과정 연구조교·서울대 졸>안삼영씨·30·여·베를린자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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