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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거대기업들 「기술블록화」/불붙는 경제전쟁(기술로 이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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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거대기업들 「기술블록화」/불붙는 경제전쟁(기술로 이긴다:2)

입력
1993.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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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등 개도국 도태노린다/이전기피에 로열티도 “껑충”/독자개발하면 덤핑공세까지/대한투자 감소로 「도입창구」더 위축세계 기술패권무대에서 우리나라는 「고립의 길목」에 들어서고 있다.

지금까지 성장을 지탱해 준 저급 기술은 더이상 국내 산업을 지켜줄 수 없으며 경쟁력 유지에 도움되는 고급 첨단기술은 물론 중급 실용기술조차 비싼값은 주고도 도입이 어려워졌다. 그나마 온갖 어려움을 딛고 몇가지 독자 기술개발에 성공할 만하면 즉각 일본 등 기술선진국의 덤핑공세와 교란책동에 휘말려 싹도 틔우지 못한 채 말라 죽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지난 91년 한해동안 국내 산업이 연간 해외로부터 들여온 기술은 모두 5백82건. 도입건수도 1년전보다 21%나 격감했다. 반면 선진국의 핵심기술이전 기피 여파로 로열티는 갈수록 비싸져 건당 기술료는 88년이후 3년만에 배이상 늘어났다.

기술도입 감소현상은 석유화학·전기전자·기계·금속 등 향후 우리 경제를 이끌고 나갈 중화학 첨단산업종에서 더욱 두드러져 심각성을 더해준다.

국내 제조업의 해외기술 의존도는 일본보다 평균 6배이상 높다. 특히 전기 기계 화학 등 첨단업종에선 전체 기술개발 투자비 가운데 해외기술 도입에 쏟는 금액이 평균 30%대를 웃돌고 있다.

기술도입이 어려워진데다 자체 기술개발이나 부품 국산화 노력이 제대로 진척되지 못할 때 기업은 핵심부품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지난90년 전체 수입가운데 부품 등 자본재 수입비중이 무려 36%,금액으론 2백54억달러에 이르렀다. 기술력이 뒷바침되지 않은채 전자 자동차 등 주력상품의 수출을 늘리려 아무리 애써도 되레 부품 수입만 확대,오히려 국제수지를 더 악화시키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악순환이 바로 이것이다.

지금까지 주된 기술도입 창구이던 외국기업의 대한 직접투자도 최근 급격히 줄고 있다. 88년말 당시 총 12억8천만달러 였던 외국기업의 직접투자 규모가 90년에는 8억달러를 겨우 웃돌만큼 위축됐다. 특히 일본의 경우 88년 7억달러에 육박한 대한투자 규모가 90년 겨우 2억3천만달러로 현저히 감소,일본계 기업이 고임금과 노사분규를 피해 동남아 등지로 탈출하고 있음을 반영했다.

전문가들은 우리경제가 겪고 있는 「기술고립」현상이 크게 봐서 세계 경제의 두가지 큰 흐름때문에 불가피한 것으로 분석한다.

국제 경제질서상 지역주의 가속화와 선진국 기업간 전략적 제휴 확산이라는 양쪽 측면에서 동시에 우리 경제는 기술고립을 강요받고 있다는 것이다.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유럽공동체(EC)등 기존 지역권뿐 아니라 일본도 대만 홍콩 싱가포르 동남아국가로 이어지는 아시아 경제권의 실질적 맹주로 떠오른지 이미 오래다.

임금이나 자본력 보다는 기술이 국가간 경쟁력 우열을 가름하는 핵심요소가 되고 있는 기술패권주의 시대에서 국제 경제질서의 블록화는 곧바로 기술의 배타적 블록화로 직결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이 자국에 호의적인 대만 홍콩 동남아 국가 등과는 분업협력 체계를 형성하면서 특히 한국에 대해 갖은 견제 고사작전을 펼치는 배경을 어느 정도 간파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독자기술 개발에 성공하기 무섭게 관련 부품 덤핑공세,유사기술 유출 등 노골적 방해에 나서는 일본의 행태는 수출상품 구조가 비슷한 한국이 일본에 도전할 여지를 미리 봉쇄,기술 종속을 강요하는 움직임에 다름없다.

선진국 주요 거대기업들은 80년대 중반이후 「경쟁을 위한 협력」을 급속히 확대하는 추세다.

미국의 선마이크로시스템사는 최대경쟁기업 일본 마쓰시타와 손을 잡고 컴퓨터와 오디오­TV가 모두 연결된 차세대 가전품 시장을 석권하기 위해 소위 멀티 미디어 기술의 공동개발에 나섰다.

일본의 미쓰비시와 독일 벤츠사는 항공 우주 전자 분야에서 상호제휴계약을 체결,주식공동소유 등 세계 시장제패를 위한 동맹체계를 지향하고 있다.

세계 거대 기업들의 전략적 제휴는 자동차 전자 항공 등 고도 기술과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는 업종에서 일반화된 현상. 자동화·정보화 기술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개도국 진출을 통한 저임금 획득이 더이상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아래 거대기업끼리 고도 기술의 상호교환,투자능력 보완을 통해 전세계 시장에서 독점적 경쟁력을 추구하고 있다.

기업의 국제 제휴과정에서 우리처럼 상대방에게 내놓을 보완적 기술이 부족한 국가나 기업은 철저히 따돌림을 당하고 자연도태될 게 뻔한 이치다.

결국 기술도입 격감,로열티 급등,독자개발 방해공작으로 이어지는 기술고립 현상은 세계 경제의 도도한 흐름에서 우리나라가 명백히 소외되고 있다는 증거라는 지적이다. 최고만이 살아남는 기술전쟁시대에 뼈를 깎는 개발노력을 쏟기는 커녕 싸구려 수입기술로 온실속 내수시장 갈라먹기에나 눈이 어두웠던 기술약자가 당연히 감수해야 할 시련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유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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