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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새댁 “새해엔 엄마”/고국 시집살이 첫해보내는 평창 정영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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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새댁 “새해엔 엄마”/고국 시집살이 첫해보내는 평창 정영옥씨

입력
1992.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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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총각과 맞선 농군의 아내로/생활풍족해도 고향생각하면 눈물이/“풍작이 되레 값폭락”이해못해『닭띠해인 93년엔 닭띠인 남편을 닮아 튼튼하고 잘생긴 아들을 낳고 싶습니다』

지난 2월 영농후계자 김월수씨(35)와 결혼,첩첩산중인 강원 평창군 진부면 수항리 마을에 살고있는 연변새댁 정영옥씨(21)는 일생에 가장 중요한 해였던 92년을 보내며 한국에서 맞는 첫 새해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부풀어 있다. 임신 5개월째인 정씨가 김씨와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은 91년7월 사단법인 가정복지 연구회(회장 노승옥·67·여)가 주선한 「제1차 한국 농촌총각·연변처녀 맞선행사」에서 만나면서 부터.

고교졸업후 농사를 지으며 20여번의 맞선에서 「농사꾼」이라는 이유만으로 퇴짜를 맞았던 김씨는 같은 처지의 노총각 17명과 함께 신부감을 찾아 중국 방문길에 나섰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불과 이틀간의 만남으로 그쳤지만 그후 7개월여동안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랑을 쌓았다.

김씨부부는 1차 맞선에서 사랑에 골인한 다른 2쌍과 함께 지난 2월 강영훈 대한적십자 총재의 주례로 서울올림픽 유스호스텔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3박4일간 제주도 신혼여행도 다녀왔다. 한중수교 전이어서 신부측은 아버지만 겨우 참석했지만 3남4녀의 혼사를 걱정하다 어렵게 맏며느리를 맞은 김형득씨(56)내외의 극진한 사랑에 연변새댁은 시집살이에 적응해 갈 수 있었다.

게다가 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컬러TV,냉장고,가스레인지 등이 갖추어져 있어 생활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정씨는 고향의 노부모 생각으로 혼자 눈물짓곤 해 남편의 애를 태운다.

정씨의 고향 길림성 공주영시는 조선족이 별로 없는 농촌 오지로 좋지 않은 서울 소문만 들은 부모 친척들은 결혼전에 『한국은 사람살 곳이 못된다던데』라고 걱정했었고 외항선원인 오빠도 부산에 들를 때마다 부모가 2남1녀중 외동딸인 정씨 걱정에 베겟잇을 적신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정씨의 가장 큰 고역은 음식문제 였다. 이곳의 음식은 기름을 많이 쓰는 중국조선족과 달라 정씨 자신이 고통스러운데다 시부모와 남편이 자신의 음식솜씨를 달가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송편빗는 일도 서툴러 정씨는 추석때 여럿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한 친척아주머니가 『떡을 잘 빚어야 예쁜 아기를 낳는다』며 짓궂은 농담을 던지는 바람에 울상이 됐었다.

결혼식때 처음 입어본 한복 역시 옷고름매는 일부터 쉽잖아 아무래도 맵시가 나지않고 친척어른들 얼굴익히기에도 벅찬데다 촌수며 부르는 호칭은 왜 그리도 복잡한지 매번 애를 먹는다.

그러나 정씨에겐 문화의 차이 보다는 풍작이 들어도 값이 떨어지면 헛농사가 되고 마는 자본주의 농업경제를 이해하는 일이 더 어려웠다.

주로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평창군은 전국에서도 잘살기로 손꼽히는 고장. 3만여평 밭농사에 부업으로 구멍가게를 하는 김씨네는 넉넉한 편에 속하지만 올해엔 감자값이 폭락한데다 병충해로 배추농사까지 망쳐버렸다.

시부모와 남편의 근심어린 표정에 무척 속이 상했다는 정씨는 농부의 아내다운 새해소망을 갖게 됐다.

『새해엔 농사도 잘 되고 값도 나아져 뙤약볕에서 1년내내 고생한 만큼 보람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씨는 농번기가 닥치기전인 내년2월에 남편과 함께 중국으로 뒤늦은 신행을 갈 계획이다.<평창=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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