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성적표가 나쁘다. 일본은 흑자가 1천억달러를 넘어 웃지 못할 고민에 빠져 있고 대만은 선진국의 문턱이라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올 연말에 돌파했다는 즐거운 뉴스에 들떠 있다.그러나 우리 손에 쥐어진 성적표는 한마디로 실망스러운 것이다. 한때 사정권안에 든 것처럼 보였던 일본은 멀리 시계밖으로 벗어나 버렷고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하며 같은 경쟁대열에 섰던 대만과 싱가포르,홍콩 등도 이제는 열을 달리하는 입장이 돼버렸다.
11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낮은 성장률과 만성적인 국제수지적자,근로기강의 해이와 꺽인 기업의욕,경제는 뒤로 제쳐둔채 마냥 들떠 있는 정치과열 등을 무엇하나 희망을 갖기 어렵게 돼있는 형국이다. 무서운 속도로 추격해오고 있는 중국과 태국 등 아시아 닉스 국가들의 기세가 두렵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울한 연말이 아닐 수 없다.
올해는 정말 어수선한 한해였다. 연초부터 중소기업 대책이니 금리인하니 하며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쏟아왔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경제의 밑거름이 돼야할 중소기업이 1년간 1만개 이상 쓰러져가는 가운데 중소기업인의 자살이 꼬리를 물었다. 그나마 어렵게 다져논 물가안정이나마 위안거리로 삼아야할 딱한 형편이다.
대선을 앞두고도 경제의 거품을 빼기위해 인기없는 안정화정책을 고수한 점은 우울한 가운데서도 한가닥 위안이 될만한 수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안정을 위해 성장을 희생했고 더구나 신바람내며 일할 수 있는 활력을 꺾어놓았다는 혹평도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60년대이래 30여년간 지속해온 성장전략이 한계에 도달했다는데 있다. 낮은 임금과 정부의 지원으로 중저가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시대는 끝났다. 새 성장전략을 짜내지 못하면 우리는 여기서 주저않고 영원한 낙오자로 남을 수 밖에 없다. 6년대초에 그랬듯이 이제는 백지위에 다시 나라의 미래를 새로 그려나가야 할 때다.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들고 우울한 연말을 맞아 내년의 희망을 얘기하자면 모든 걸 새로 시작한다는 각오밖에 달리 내세울 것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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