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후 「소말리아」등 강한 발언권/미 이해 얽혀 세계경찰 기능엔 “한계”【뉴욕=김수종특파원】 부트로스 갈리가 유엔 사무총장의 역할을 바꿔놓고 있다.
금년 1월1일 유엔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갈리는 탈냉전이후 유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점을 포착,국제정치무대에서 강한 발언권을 행사하는 위치를 확보했다.
갈리 총장은 국제분쟁에 대해 전임 케야르 사무총장이 안전보장이사회의 뜻에 따라 중재외교를 조용히 펼치던 스타일을 뒤바꾸고 있다. 어느새 갈리 총장은 유엔의 가장 강력한 기구인 안전보장이사회와 더불어 나란히 유엔을 이끌어나가는 실세의 면모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최근 소말리아사태에 대한 유엔 개입과 미군파병 도출은 갈리 총장의 전형적인 접근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갈리 총장은 지난 여름 유고사태 논의에서 안보리가 자신과의 협의를 배제한데 불만을 터뜨리면서 서방국가들이 소말리아 기아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난했었다. 유엔내의 이 조그만 파워게임은 결국 서방국가들로 하여금 제3세계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계기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갈리 총장의 권위를 확보하는 계기도 되었다.
갈리 사무총장이 이같이 정치적 힘을 확대할 수 있는 이유는 강대국을 향해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있는 그의 권위도 작용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미소 두 슈퍼파워가 세계질서를 팽팽히 유지함으로써 유엔을 무력화시켰던 냉전체제가 붕괴됐기 때문이다. 세계각국이 유엔을 통한 국제분쟁 해결을 바라는 여론을 조성하고 있고 유엔이 과거와 다른 기능을 해줄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냉전의 승자인 미국도 국민들의 고립주의적 요구 때문에 유엔을 통한 해결을 바라게 된 것이 유엔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고,따라서 유엔 사무총장의 힘도 커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유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사무총장의 권위가 강화된 것과 비례하여 유엔이 세계경찰 노릇을 효과적으로 행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짙은 회의가 남아있다. 유엔이 할 일은 많아지고 있으나 동원할 수 있는 자원과 힘은 절대적으로 모자란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선 평화유지활동(PKO)을 위해 유엔은 현재 유고 캄보디아 소말리아 등 12곳에 약 5만명의 평화유지군을 운영중이다. 그러나 평화유지군을 효과적으로 파견하는 문제에서부터 올해만해도 30억달러에 이르는 평화유지비를 갹출하는 일이 유엔에 큰 부담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유엔기능 강화를 위한 방법으로 평화유지 뿐 아니라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고 당사자간의 협정위반으로 발생하는 분쟁에 유엔이 즉각 개입하여 사태를 해결하는 예방외교와 평화조성(Peace making) 활동이 필요해지게 됐다. 평화조성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일종의 유엔상비군 개념이다.
유엔상비군 개념은 갈리 사무총장의 핵심 현안이다. 갈리 사무총장의 핵심 현안이다. 갈리 총장은 지난해말 유엔안보리 정상회담의 위임에 따라 「평화를 위한 과제」(Agenda for Peace)를 작성했는데,갈리는 이 보고서에서 유엔 신속 배치군제도를 제안했다.
그러나 각국의 잡다한 이해가 얽힌 유엔은 갈리의 제안을 용이하게 현실화시킬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 22일 일단 막을 내린 올해 유엔총회의 주요 의제가 갈리 총장의 제안이었지만 구체적인 합의를 보류하고 있다. 더구나 상비군개념에 대해서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흔쾌한 응답을 하지 않았다.
유엔상비군 문제를 비롯,유엔에 실질적인 힘을 부여하는 문제는 갈리 총장으로서는 절실한 문제이나 유엔에 가장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은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즉 지금까지 사실상 세계경찰 노릇을 하고 있는 미국은 혼자서 세계질서를 유지할 경제·군사적 부담은 떠맡지 않으며 유엔을 강화하는데도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갈리는 내년 1월 취임하는 클린턴 행정부에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다. 클린턴은 공화당 정부와는 달리 유엔을 통한 국제분쟁 해결을 주장하고 있고 따라서 유엔역할의 강화조치에 동조할 것이라는 기대인 것이다.
그렇다고 클린턴이 당초 구상했던 유엔기능의 강화가 취임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될지는 미지수이다. 상비군 등 유엔활동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향후 미국의 지도력 등과 관련해서 면밀한 검토가 있은 후에나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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