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8 대통령선거는 역사적으로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재벌과 정치의 관계정립이다.12·18 대통령선거 후유증의 처리결과는 앞으로의 정·재계 관계형태로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므로 이번의 선거사범 특히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현안의 선거법 위반 등에 대한 처리여하는 당연히 지대한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점에서 유창순 전경련 회장이 23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소견은 상당히 시사적이다. 유 회장은 『…민주주의사회에서는 누구나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인의 정치참여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다만 현대그룹이 기업자금을 정치자금으로 전용한 것이 사실이라면 법률에 의거해서 처리돼야 할 것이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정부의 현대그룹에 대한 지나친 제재는 옳지 않으며 국민들도 그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는 것이다.
유 회장은 이어 『개인적으로는 기업경영과 정치가 뒤섞이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하며 전경련 등 재계가 정부와 현대그룹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중재에 나설 계획은 전혀 없다』고 했다.
현대그룹의 선거법 등 실정법 위반혐의 및 그 처리와 관련한 유 회장의 견해에 대해 국민 대다수는 공감할 것으로 보인다. 유 회장의 말마따나 기업인이라고 해서 정치에 참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실 많은 기업인 출신 정치인들이 있다. 변칙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전국구 국회의원 자리는 야당의 경우 사실상 돈을 받고 파는 자리처럼 돼왔다.
우리의 헌법은 직업을 이유로해서 대통령출마를 제한하지 않고 있다. 세계 어느나라 헌법도 마찬가지다. 재벌의 정치참여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가 있다. 한국 최대의 재벌그룹인 현대그룹의 총수였던 정주영 국민당 대표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 것 그 자체는 법률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는 것이다.
미국의 텍사스주 출신 거부 로스 페로가 출마한 것이 줄곧 비교됐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미국과는 달리 국민정서면에서 재벌의 정치참여에 대한 높은 거부의 반응이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재벌의 부의 축적과정이 정경유착 등 부당하고 불공정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는 인식이 높아 반재벌정서가 강렬하다.
문제는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실정법 위반혐의다. 급조된 정당으로서 전통적인 지지기반이나 정치적인 조직기반이 없는 국민당으로서는 대통령선거를 치르자면 현대그룹으로부터 조직,인력,자금의 지원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법은 지켰어야 했다. 현대그룹의 그룹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선거참여는 도덕적으로 수용되기 어렵다. 실정법을 위반했다면 당연히 법대로 처리돼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보복의 의도가 얹혀져서는 안된다.
정경분리는 집권자나 재벌정치인이 다같이 지켜야 한다. 그 교훈이 이번 선거사범 처리를 통해 확립된다면 우리 정치는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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