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새 시대를 맞고 있다. 오는 2월25일이면 김영삼시대가 정식 출범한다. 한세대만의 문민정치 회복이다. 12·18 대통령선거가 광복이후의 「가장 공명한」 선거이고 또한 패자들 특히 숙명적 라이벌이었던 「양김」의 다른 한쪽인 김대중 민주당 후보의 깨끗한 승복이 있었기에 새 시대의 출발에 신선한 기대를 갖게 한다. 「경제 우등생,정치 낙제생」경제와 비교해 너무나 왜소한 정치가 하루아침에 어른이 된 것 같다. 정치가 흥하고 경제가 쇠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가 됐다.김영삼 대통령당선자는 당선소감을 『기쁨보다 책무를 느낀다』는 말로 시작했다.
그는 이어 자신의 대선승리를 「안정속의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모두의 승리」라고 하고 『신한국의 창조를 위해 고통의 분담을 호소한다』고 했다. 김 대통령당선자는 앞으로 5년동안 한국과 한국인을 어디로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국민들은 김 대통령당선자가 어떠한 지도력과 국정 청사진을 보여줄지 오각을 세우고 있다. 김 대통령당선자는 12·18 대통령선거에서 「신한국」 「신경제」를 국정의 슬로건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10개 과제에 걸쳐 77개 공약을 내세웠다. 모두 꼭 지킬 것을 생각하고 내놓은 것은 아닐 것이다.
민주,국민 등 다른 당과의 경합으로 구색맞추기 위해 차용한 것도 있다. 선거공약은 어느 나라 어느 정당이건 실천의지나 가능성 보다는 당선되고 보자는 정당과 정당인의 속성이 앞서는 것이 상례다. 선거 때는 으레 내놓게 되는 그 많은 공약들을 이루다 지킬 수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선후 세우는 국정계획이다. 이 계획은 정책집행 계획이다. 국가의 필요와 국민의 요구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반영하는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당선자의 국정계획은 2,3개의 최우선 과제에 역점을 두는 것이 효과적이고 그것도 취임 1백일안에 밀어붙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한다.
뉴역 타임스지의 헤드릭 스미스 기자는 그의 명저 「힘의 게임」에서 『권력의 행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어떤 문제에 최우선 순위를 둘 것인가. 또한 어떤 쟁점을 제일 먼저 공략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는 『국정목표를 명확히 설정하지 못하면 선거승리로 얻은 활력을 잃게 되고 대통령이란 자리가 갖고 있는 잠재적인 힘까지 충분히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이 한창이던 33년 1월 취임 다음날부터 은행의 잠정 폐쇄조치를 취하는 등 적극적인 정책을 폈으며 첫 1백일안에 TVA(테네시 계곡개발국) 등 숱한 뉴딜정책 법안을 의회에 전격 통과시켜 뉴딜정책의 기틀을 세웠다.
한세대뒤에는 린든 존슨 대통령이 케네디 암살(63년 11월)에 따른 슬픔과 동정을 이용,고 케네디 대통령이 통과시키지 못했던 민권법안 등을 통과시켰고 85년 1월 자기 능력으로 당선된뒤에는 역시 1백일안에 「위대한 사회」(빈곤에 대한 전쟁 등) 법안 등을 통과시켰다. 그런가하면 레이건 대통령은 81년 1월 취임후 3개월안에 감세,국방비 증대,세출예산 삭감 등을 골자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이 예산은 감세·작은 정부·행정규제의 철폐 등을 요체로 하는 레이거노믹스(레이건의 공급측면의 경제학)의 반영이었다.
대통령당선자의 국정계획 추진은 초점과 속도와 승리의 활력이 3대 요소다. 우리의 경우는 미국과 다르다. 국회가 미국과 같지 않고 민자당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다수당이다. 미국에서처럼 대통령 국정계획의 입법화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당선의 활력」이다. 김 대통령당선자도 이 힘이 소진되기 전에 국정계획을 행동화해야 할 것 같다. 「신한국」 「신경제」는 너무 포괄적이고 백화점처럼 나열식이다. 우선순위와 완급을 과감히 결정할 필요가 있다. 초점이 있어야겠다. 메시지가 선명히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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