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연광산 발판 11개 기업 재벌그룹 일궈정치·경제·교육계에 걸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서봉 이동녕 봉명그룹 명예회장이 22일 상오 8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이 명예회장은 일본인이 남기고 간 흑연광산을 발판으로 기업을 일으켜 탄탄한 그룹으로 성장시켰고 정계와 교육계와도 깊은 인연을 맺어 많은 위업을 쌓았다.
이 명예회장은 18세에 문경군청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1940년에 오늘날 그룹의 모체가 된 광산업과 인연을 맺은뒤 1947년 성실과 정직성을 인정받아 일본인이 남기고 간 흑연광산의 경영을 맡았다. 광복이후의 혼란과 6·25로 기업활동을 중단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60년대부터 식품·레저·기계분야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봉명산업과 아세아시멘트를 주축으로 한 11개 계열기업군을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대부분의 기업인들이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기업을 일으킨 것과는 달리 그는 고향인 문경에서 사업을 시작해 서울로 진출했다는 점에서 고향에 대한 애착심이 유난히 강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명예회장이 고향을 중심으로 많은 사업을 추진하고 정치와 교육에 인연을 맺은 것도 그의 깊은 애향심에서 비롯됐다는 것.
58년 제4대 민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발을 디딘 이 명예회장은 6대 국회의원을 거쳐 65년 민주공화당 경북도당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7대 국회의원을 지낸뒤 고향의 후진양성을 위해 8대 국회의원 공천을 사양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교육에 대한 이 명예회장의 열정은 남달랐다. 문경군내에 남자중학교만 5개 뿐이었던 55년에 처음 여자중학교를 세운 것을 봐도 그의 선구자적인 안목을 읽을 수 있다. 이후 그는 문경여고와 문창고교를 설립하고 영남학원과 성균관대학교 재단이사장을 맡는 등 육영사업에 열과 정을 쏟았다. 이 명예회장은 문경여중을 세울때 자신이 직접 공사현장에서 인부들과 함께 흙을 파고 자재를 나르던 일이 생애중 가장 보람찬 일이었다고 자주 회고했다고 한다.
이 명예회장은 산업발전 및 육영사업에 헌신한 공로로 석탑산업훈장과 국민훈장 동백장,봉황장을 받았다.<방민준기자>방민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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