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서 패배한 한 정치인의 퇴장이 보는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다.김대중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자신의 패배가 확정된 날 아침 기자회견에서 『패배를 겸허한 심정으로 인정하고 김영삼후보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하고 국회의원직 사퇴와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패장은 본래 할 말이 없는 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깨끗한 패배승복과 정계은퇴 선언은 투·개표의 결과로 들떠 있던 많은 사람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30년동안 민주화를 위해 군사독재정권과 목숨을 걸고 투쟁해왔던 동지이며 숙명적인 적수인 김영삼 민자당 후보와 김대중 민주당 후보가 유권자의 엄숙한 심판에 따라 한사람은 문민정치를 개막하는 제14대 대통령당선자로 역사의 무대앞에 나서고,또 한사람은 선거의 패자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정치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세번째의 대권 도전에서 실패한 김대중씨가 울먹이는 모습으로 40년 정치인생 무대에서의 퇴장을 선언한 대목은 매우 비장하고 인상적인 장면이다.
우리가 김대중씨의 퇴장에 연민을 느끼는 것은 그가 30년동안 군사독재와 싸워오면서 네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국민을 배반하지 않고 지표를 굳굳하게 지켜왔으며 전후 6년동안 영어의 몸으로 있으면서 독서와 사색으로 뛰어난 경륜을 넓히고 다져왔으면서도 끝내 그의 꿈과 갈고 닦은 능력을 펼칠 기회를 잃게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형이 임박한 순간 말 한마디로 자신의 목숨을 건질 수 있는 기회를 앞두고도 굴종을 거부할 수 있었던 그가 대권 도전의 3수에까지 실패한 것은 그 자신의 말대로 「부덕의 소치」이거나 「민심은 곧 천심」의 결과로 믿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그점을 위로하고 싶다.
김대중씨는 84년 그의 영원한 민주동지이자 경쟁자인 김영삼씨와 함께 민추위를 결성했고 85년엔 신민당을 창당하여 「2·12 총선」에서 야당의 돌풍을 일으켰다. 또한 직선제 개헌운동과 87년 「6월 항쟁」으로 6·29 선언을 끌어냄으로써 문민정치의 기반을 닦을 수 있게 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87년 「12·16 대선」에서 양김의 분열로 노태우대통령에게 승리를 「헌납」,문민정치의 실현과 「양김 정치의 청산」을 그만큼 늦추는 결과를 초래했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만약 그 때 양김씨중 한사람이 차례를 양보했더라면 두사람 모두가 문민 대통령으로 마음껏 경륜을 펼쳐 한국의 정치발전을 훨씬 앞당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아쉬움은 소용없는 일이다. 지난 일의 평가도 역사에 맡겨야 한다. 다만 우리는 오늘 김 후보의 깨끗한 승복과 정계은퇴 선언에 거듭 박수와 연민의 정을 함께 보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정치는 군사독재정치에 의해 본의 아니게 20년동안이나 양김구도에 의해서 이끌려 왔던 것이 사실이다. 너무 길고 지루한 세월이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 세월은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성취해온 값진 시기이기도 함을 잊을 수 없다.
대통령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원한 민주투사로 역사에 기록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영예스러운 값이 있다고 우리는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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