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와 개표가 남았다. 내일 새벽이면 우리는 우리가 누구를 제14대 대통령으로 뽑았는지를 알게 된다. 역사의 변화 앞에 마주 선 엄숙한 시간이다.지나간 「열전 28일」을 되돌아 볼 때,이번 선거전은 과열로 인한 공명시비와 금권,관권,타락 현상이 여전히 만만치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지난 87년 대선때의 험악했던 지역감정과 노골적인 관권개입 시비에 비교하면 이번 대선에서는 그래도 공명선거로 향하는 중요한 한 발을 내디뎠다는 역사적 의미에 주목하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민주화의 초석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이다.
당장의 문제는 투·개표 과정이다. 지나간 선거운동 과정이 설혹 공명했다고 하더라도 투·개표 과정에서 잘못이 발생하면 만사는 끝장인 것이다. 87년 대선대의 구로구청 개표장 점거사건처럼 정치적인 혼란과 큰 후유증을 남긴 사례가 허다했음을 우리는 역대선거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이번 만큼은 이같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선관위를 비롯한 관계행정당국은 투표 및 개표참관,투표함 호송 등에서 빈틈없는 사전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노태우대통령의 9·18선언과 그에 따라 탄생한 현승종 중립내각은 이번 대선을 어느 때보다도 공정하게 치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왔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러나 선거전의 과열에 따른 금권 및 관권공방,현대에 대한 압박수사 등을 통해 중립내각의 중립성이 자주 훼손되고 의심받았음도 사실이다. 한국일보가 미디어리서치와 함께 실시한 선거여론 조사결과(16일자 1면 보도)에 의하더라도 현 내각에 대해 「대체로 중립적」이라고 본 유권자가 24.8%였는데 비해 「편파적」이라고 본 유권자는 두 배를 넘는 53.8%나 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전직 법무장관이 소집한 「부산기관장대책회의」는 적어도 노 대통령과 현 내각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행정조직의 말단에서는 관료들의 타성과 관성에 의한 관권선거가 여전히 자행되어 오지 않았느냐는 의구심을 불어 넣기에 충분했다.
이같은 타성적인 관권개입이 역사적인 대통령선거를 마무리하는 투·개표 과정에서 만에 하나라도 자행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투·개표의 부정은 있을 수 없는 시대라고 굳게 믿지만 말단에서의 「맹동분자」에 의한 사적인 잘못에 대해서까지 언제라도 경계심을 늦출 수 없는 것이다.
지금 항간에서는 이번 대선기간 중에 빚어진 혼탁의 정도보다는 선거 후에 닥칠 정국혼란의 강도를 걱정하는 소리가 더 많다. 그 이유는 접전 양상을 보인 이번 대선에서 유효투표의 3분의 1선에서 근소표차로 당선자가 결정 될 경우 선거 결과에 대해 불만을 품은 유권자가 3분의 2선에 가깝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 불만세력을 승복시킬 수 있는 길은 오직 오늘 실시되는 투·개표의 공정성 보장에 달려 있다. 일부 공무원들의 과잉 충성에 의한 관권시비가 없도록 철저히 단속하는 것은 물론 그에 못지 않게 열성지지자에 의한 개표 방해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엄중한 경계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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