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후보들의 TV유세 연설/이행원 논설위원(메아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후보들의 TV유세 연설/이행원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2.12.11 00:00
0 0

구미의 위대한 정치가들은 거의 모두가 수사학의 대가였고 뛰어난 연설가였다. 대영제국의 수상을 4차례나 역임했던 글래드스턴(1809∼1898)은 전무후무한 연설의 달인으로 꼽힌다.의회제도의 효시인 영국에는 「의회주의 역사는 의회연설의 역사」라는 말까지 있다. 올리버 크롬웰,에드먼드 버크,로이드 조지,저 유명한 윈스턴 처칠 등은 의회의 명연설가 반열에서 맨 앞에 서 있다.

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의 수상 클레망소,독일의 철의 재상인 비스마르크 또한 당대의 대연설가들이고 링컨과 윌슨 대통령은 미국이 낳은 명연설가들이다.

우리의 길지 않은 의정사와 정당 정치사속에도 상당한 연설가와 달변인,독설가들이 부침했지만,56년 대선때 한강백사장에서 했던 해송 신익희의 사자후만큼 동시대인들의 가슴속에 각인되어 회자된 명유세 연설은 없을듯하다.

라디오의 보급이 구미에서 일반화된 1930년대 와서는 정치가의 대중연설은 효과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독재자 히틀러의 경우는 예외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라디오를 통한 노변담화로 국민들속에 파고들어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지지세력을 확보하는 방법을 개발,애용했다.

텔레비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60년대부터는 영상매체가 선거운동에서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게 됐다. 풋내기 케네디가 노련한 닉슨을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변은 TV라는 영상매체의 마력 때문이라는 에피소드까지를 낳았다.

구미의 의회주의 국가에서는 19세기와 20세기초까지도 연설의 재능이 없이는 정치적으로 큰 성공을 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오늘날은 달라졌다. 대중연설보다는 토론형식의 대화가 자신의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공격을 방어하는데도 훨씬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것이 TV 앞에서 하는 것이라면 사자후식 웅변조 연설은 별로 쓸모가 없는 세상이 돼버렸다. 진실하고 냉정하며 합리적이고 지적인 말솜씨와 매너를 갖춰야만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외국은 벌써부터 그렇게 됐으며 우리도 이제는 마찬가지 추세가 역연하다.

대통령후보들의 TV와 라디오방송 연설이 한창인 요즘 유권자들은 밤마다 안방에서 후보들을 만나는 것이 일과처럼 됐다. 유세장에 나가 듣는 대중연설보다는 그래도 낫다고들 한다. 서론도 본론도 없이 결론만을 외쳐대는 유세장의 연설은 너무나 허황돼 도저히 믿음이 안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TV방송 연설도 아쉬운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분장한 얼굴로 등장해서 치밀하게 준비된 연설문을 프롬프터를 통해 읽어대는 모습과 일반적인 자기선전,아전인수,견강부회식의 주장과 내용들 뿐이어서 20분 연설시간이 지루한 후보도 많다고들 말한다.

유권자들이 진짜로 알고 보고 싶어하는 것은 후보들의 매끈한 구변이나 화장한 얼굴모습이 아니다. 비록 눌변이더라도 최고 통치자로서 갖춰야할 사물을 보는 투시력·사고의 민활성·창조적 발상력·시야의 폭등 지적요인과 결단력·우선순위 결정력·추진력과 주도권 확보능력·타협성 등 의지적 요인 그리고 도덕률의 준수와 권력남용의 위험도,인격적 특성과 신뢰성 등이 알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TV토론의 성사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사될 것 같지는 않아 아쉽기만 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TV방송 연설에서나마 자신의 특성과 구비요건을 보다 실감나게 보여주는 식으로 했으면 한다. TV방송 연설에서까지 헛된 소리나하고 인신공격이나 일삼기에는 그 귀중한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국민들의 귀와 눈이 무섭지 않은가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