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신뢰성·도덕성 논쟁 부족/유권자 현혹 막연한 공약뿐미국의 격렬했던 한차례 선거가 지나간후 태평양 건너편의 한국 대통령선거가 미 언론에 연이어 오르내려 비록 쟁점은 다르지만 미국인들의 정치선거 관심을 식지않게 하는 한 주요요인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선거를 역사흐름의 한 굽이라고 본다. 정치인도 교수도 또 여론도 그렇게 본다. 때문에 선거를 본다는 것은 곧 역사의 방향을 가늠하는 일이 되는 것이어서 선거는 그만큼 큰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뉴욕 타임스,워싱턴 타임스 등 미국의 유력한 인쇄매체들과 CBS,ABC,NBC 등 주요 전파매체들은 11월3일의 미국 총선이후 한국 대통령선거를 1주일에 한두번씩 보도해 왔는데 처음에는 보도의 흐름이 「30년만에 보는 민간정부 선거」 「재벌이 정치에 뛰어들었다」 「장군은 후보에 나서지 않는다」 등의 소개적 관점에서 쓰여지다가 요즘은 「돈으로 표를 사려는 행위가 여전하다」 「정주영 변수의 귀추」 등으로 상당히 구체적인 선거양상을 싣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을 여러번 방문한바 있는 컬럼비아대 교수 도널드 자고리아 박사는 선거에서의 매표노력은 정치발전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작용의 하나라면서 지금 한국선거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민간정부의 등장에 대한 기대라고 말했다. 지난 11월3일에 있었던 미국선거와 지금의 한국 대통령선거를 비교해보면 확실히 같은 점 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다.
우선 환경적으로 다르다. 미국은 당시 정부를 바꾸느냐 안바꾸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한국은 자고리아 교수의 말처럼 누가 되든 지난 세대의 군부정치시대를 청산하고 순수한 민간정부로 가는 새출발을 위한 선거이다. 미국은 3당 후보가 다 순수 민간인이라는 입장에서 누구에게든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한국문제 전문가인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 윌리엄 테일러 박사는 『미국은 어느 후보의 선출에도 이를 정중하게 받아들일 태세가 돼있다』고 미국의 입장을 분석했다. 자고리아 교수 역시 한국 국민의 결정은 한푼의 가람도 없이 국제사회에 의해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환경 역시 미국과 한국은 판연히 다르다. 미국은 소련제국의 붕괴로 2차대전이래 지속해 오던 대적(archenemy) 개념을 잃은채 이번 선거를 치렀으나 한국은 북한 공산주의자라는 여전한 적개념을 머리에 인채 선거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왜 한국선거는 미국선거와 같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곧바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선거는 그 유세내용이 너무 빈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선거는 후보들이 쟁점과 인물성격을 엇갈아가며 분석적 공방전을 계속했었다. 후보 개인과 그 후보가 이끄는 정부 정당의 과거 행적을 밑바닥까지 훑어내며 정책을 비판하고 인물됨됨을,공방했다. 세금을 올리는 것이 좋은가 안좋은가,가족휴가법을 대통령이 거부한 것이 과연 미국기업 풍토에 이로운가 해로운가,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 개입이 옳은가 나쁜가,의료보험을 어떻게 개정하는 것이 미국 소비자에게 감당할만한 선택이 되는가 등 무려 1백60여개 쟁점에 대한 후보들의 아이디어 경쟁이 불꽃을 튀기듯 열렬히 붙었었다. 쟁점에 대한 주장과 반격을 위해서는 그 후보가 과거에 한 말,편 정책,현실적 상황 등 있을 수 있는 모든 증거와 분석을 동원했다. 노벨상 수상자도 나오고 장군도 유세장에 나왔으며 각 분야의 이익단체 대변자들도 이해관계에 따라 지지쪽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수 없이 유권자 앞에 나타났다. 부시는 4년전에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 내 입술을 읽으라』고 한 말이 꼬투리가 돼 이번 선거에서 결정적인 불이익을 받게 됐었다. 인물에 대해서도 『이 사람이 과연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 있는가』라는 국민의 판단을 자기 편에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 본인 또는 상대방이 과거에 한 일,도덕성 등을 부모의 행적까지 들춰가며 선전하고 비판했다.
한국선거에서는 쟁점 논쟁이 없다. 아파트값을 반으로 내리겠다면 어떻게 내리겠다든지,그것이 왜 잘못된 주장이라느니 하는 공방이 없고 그저 뭘 하겠다라고 말하면 그것이 정강정책인 것처럼 돼있다. 후보들의 애국심,신뢰성,도덕성 등을 유권자들이 분석해 볼 수 있는 자료들도 후보들은 전혀 내놓지 않았다.<워싱턴 특파원>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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