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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클럽 후보 회견/장명수 편집국 국차장(선택의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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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클럽 후보 회견/장명수 편집국 국차장(선택의 길목)

입력
1992.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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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보다 수준높아… TV중계 안해 아쉬움1일부터 3일까지 관훈클럽의 대통령후보 초청 특별회견이 열린 언론회관 국제회의장은 저녁마다 뜨겁게 달아올랐다.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후보가 매일 한사람씩 차례로 나와 중견언론인 5명의 질문공세를 받아넘기는 세시간동안 장내엔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고 숨막히는 긴장이 있었다.

김영삼후보가 나온 첫날,질문자들은 3당 합당의 당위와 「자질론」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야당생활 30여년동안 「정직하고 의리있고 고집 센 투사」라는 인상을 심었으나,지적인 면이 약하지 않느냐는 일관된 지적을 받아온 그는 제1당의 대통령후보로서 국가경영능력을 펴보이려고 애썼다.

『군사정권 타도를 외치다 하루아침에 군사정권의 주역들과 합당하고,합당전 자신이 서명한 내각책임제 각서를 무효화시킨 것은 「정직성」과 위배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는 『개인차원의 정직과 구국차원의 결단을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9선의원에 한평생 무서운 결단을 수없이 내려온 나를 놓고 자질 운운하는 것은 웃기는 소리다. 대통령은 미주알 고주알 다 아는 만물박사가 될 필요가 없다.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결단력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회견에서 「자질론」을 희석시켰지만 「정직성」을 방어하는 「구국논리」는 설득력이 좀 약했다.

둘째날 토론에 나온 김대중후보는 「용공」과 「급진」이라는 해묵은 이미지와 싸웠다. 재야세력인 전국연합과 민주당의 연대,그 연대를 환영하고 김대중후보를 지지한 북한방송,민주당 인사들의 남한노동당 간첩사건 관련 루머 등에 대한 질문을 그는 공격적으로 방어했다.

『나만큼 철저하게 용공을 검증당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또 있는가. 내가 김일성을 위해 일할 사람인가. 13대 총선과 14대 총선때 우리당에 들어온 재야 출신중에서 그동안 노선문제로 의혹을 샀던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는가』라고 그는 반문하고 『재야세력을 제도권 정치속에 받아들이는 것은 정국안정에 기여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질문의 핵심을 꿰뚫고,막힘없는 지식으로 토론을 이끌었다. 그러나 「용공」에 대한 방어는 진부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날 나온 정주영후보는 기자회견을 시종 흥미진진하게 이끌었다. 그가 구사하는 언어는 「교양있는 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는 아니었지만,풍부한 토속적 어휘와 담대한 정확성이 있었다. 그는 능수능란한 상인이 자기 상품에 대한 험담을 물리치듯이 질문을 받아넘겼다. 진실여부를 떠나서 그가 하도 능수능란했기 때문에 질문자들이 늪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순간까지 있었다. 그는 딱 잡아떼기도 하고,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하고,무리하게 우기기도 하면서 청중을 웃겼고,세시산내내 청중의 관심을 놓치지 않았다.

막노동자에서 세계적인 재벌이 된 자신의 업적에 대한 자부심으로 그는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같았다. 그는 확신에 차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모두가 잘 사는 나를 만들 것이라고 장담하고,지금 나와있는 후보들과 자신은 전혀 상대가 안된다고 우겼다. 그의 토론은 재미있었지만,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87년 대선 때의 관훈토론과 비교할 때 이번 토론은 모두가 성장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 당시에는 민주화 의지와 투쟁경력을 밝히느라고 시간을 많이 썼지만,이번에는 국가경영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질문자와 후보의 주된 관심사였다.

토론의 질이 전반적으로 높아졌으나,격차도 있었다. 자기 자신의 수준을 높인 후보도 있고,토론 자체의 수준을 끌어올린 후보도 있고,지금까지의 진행돼온 토론의 틀을 깨뜨려 흥미를 더한 후보도 있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TV토론이 성사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방송국들이 관훈토론을 중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87년의 관훈토론은 김대중·김종필·김영삼·노태우후보의 순으로 진행된후 노태우후보의 토론이 나쁘지 않다는 결론이 내려진 후에야 전체를 편집없이 녹화방송했다. 이번에도 혹시 그런 배려를 하고 있는 방송국은 없는지,씁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토론의 질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에 가장 알맞은 매체는 TV다. TV는 활자매체가 전달못한 각 후보의 미묘한 차이를 유권자들의 안방에 전달해줄 수 있다. TV토론이 성사되고,관훈토론 같은 행사가 주저없이 생방송된다면 우리나라의 선거풍토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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