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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웃음거리」에 분노(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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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웃음거리」에 분노(사설)

입력
1992.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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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007기 블랙박스를 둘러싸고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없는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19일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전달한뒤 열흘동안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던 국민의 입장에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보도된 것처럼 옐친 대통령이 넘겨준 블랙박스는 핵심자료인 비행기록이 없는 빈 깡통이요,음성기록 테이프도 복사된 것이었다. 마치 한국과 러시아 사이 주요 현안의 하나가 러시아쪽 선의로 간단히 해결된 것처럼 떠들고 믿었던 일이 짤막한 코미디로 막을 내린 셈이다.

이 블랙박스 인도극이 두나라의 우호·선린을 위해 계획된 것이었다면,그 결과는 정반대로 없었던니만 못하게 된 것이다. 국가간 외교관계에 있을 수 없는 이런 코미디가 어떻게 해서 벌어졌는가? 열흘동안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던 우리는 9년전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전투기에 의해 격추됐을 때와 같은 충격을 느끼면서 그 진상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의문은 간단한 것이다. 우리를 분노케한 블랙박스의 「검은 내막」이 러시아측에 책임이 있는가,그렇지 않으면 우리쪽에 책임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선 러시아쪽의 사정으로 크렘린 당국이 저지른 미숙한 외교적 각본이 아니라면,옐친 대통령에 반대하는 수구 관료진의 계획된 방해공작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어느 쪽이건 러시아는 결과적으로 한국을 국제적인 웃음거리로 만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와관련해서 페트로프 러시아 대통령궁 비서실장은 『고의로 핵심자료를 빼고 전체자료인양 한국에 넘겨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책임은 넘겨준 쪽이 아니라,넘겨 받은 쪽에 있다는 얘기가 된다.

더구나 여객기 격추사건이 진상규명 절차에 관해 러시아쪽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주도권을 넘기겠다는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도 주목된다. 옐친은 국회 연설서도 『다자간 국제진상조사단 구성』을 제의한다고 했고,문제의 블랙박스를 인도한 자리에서도 『추가자료 인도 등 협조』를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었다. 페트로프 비서실장도 1일 한국기자들과의 회견에서 ICAO 중심의 조사단 구성방침임을 재확인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러시아측이 블랙박스 자료 일체를 전달했다』고 발표한 우리쪽에 있다는 얘기가 된다. 「북방외교」를 하늘에서 따낸 업적처럼 자랑해온 정부가 저지른 코미디가 아니냐는 의문이 여기에서 제기된다.

블랙박스가 빈 깡통임을 알고도 딴전을 부렸건,또는 애초에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외교경로를 통해 확인하거나 사후에 점검하는 절차도 없이 발표했건 결과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그 경위를 시원하게 국민앞에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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