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하자금은 CD를 좋아한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하자금은 CD를 좋아한다

입력
1992.11.28 00:00
0 0

◎고리에 떼일 염려없고 신분 노출위험 전무/제도권 금융기관 파고드는 연결고리 작용가짜 CD(양도성 정기예금증서) 및 이희도 전 상업은행 명동지점장 자살사건으로 CD가 은행 증권사 등 제도금융권과 지하자금을 유착시켜주는 연결고리로 작용하고 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자살한 이씨는 사채업자인 김기덕씨를 통해 올들어서만 무려 4천억원어치의 CD를 대신증권에 팔았고 대신은 이를 포함,올해중에 김씨를 통해서 7천억원어치의 CD를 샀다.

가짜 CD를 1백94억원어치나 불법유통시킨 것으로 드러난 3개파 위조범들은 모두 사채업자로 은행과 증권사를 안방 드나들듯 자유롭게 거래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예금고가 3천3백억원에 불과한 인천투금은 모두 1천5백억원대의 CD를 이씨로부터 매입,뒤에 숨겨진 전주가 있는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명동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채업자들은 지난 10월 송탄금고 사건때 송탄금고와 수원금고에 각각 9백억원과 6백억원의 자금을 예치시켜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른바 자금조성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이같이 CD가 제도금융과 지하금융의 온상인 사채시장을 연결하면서 변칙적 지하거래의 매개수단이 되고 있는 것은 CD를 둘러싼 은행,기업,사채업자의 3각 이해관계가 딱맞아 떨어지기 때문. 즉 자기돈에 대한 안전판을 원하는 사채업자,수신목표,채우기에 급급한 은행원,급전이 필요한 기업이 모두 CD를 매개로 한 변칙적인 지하거래를 통해서 이익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CD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발행금리와 유통금리에 큰 차이가 있을뿐더러 무기명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거래해 현금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CD의 현재 발생수익률은 연 12%,유통금리는 14%선이며 지난 연초에는 발행금리 14%에 유통금리 20%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은행에서 발행금리로 사면 유통금리와의 차이만큼 비싸게 매입하는 것이므로 아무도 은행에서 사려들지 않는다.

그런만큼 정상적인 발행 자체가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다. 그러다보니 은행들은 예금을 늘리기 위해 기업에 대출해주면서 꺾기로 대량의 CD를 떠안긴다. 돈이 급한 기업들은 사채업자 등을 통해 유통시장에 덤핑으로 내놓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CD는 발행되자마자 기업에서 사채시장으로 넘어오게 돼있다. 관계자들은 CD발행액 14조원중 대부분이 사채업자 수중에 있거나 현재 사채업자를 통해 유통중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더구나 CD는 무기명으로 거래돼 자금추적이 문제가 된 CD도 만기가 되면 예금주가 나타나겠지만 도중에 누구 손을 거쳤는지를 알수 없다. 이같은 은밀성때문에 신분노출을 꺼리는 사채업자들이 CD를 좋아한다. 또 사채업자 입장에선 CD를 통한 자금운용이 안전할 뿐더러 수익도 짭짤하다. 사채업자는 CD대금이 신용이 확실한 은행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우선 원금보장이 확실하고 중간에 할인해서 산만큼 이자를 받는다. 또 은행을 사이에 끼고 기업과 실질적인 사채거래를 하는 소위 자금조성 방식의 경우 CD자금 대출에 따른 커미션까지 챙기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이해관계의 일치로 89년 1조8천억원에 불과하던 CD잔액은 90년 6조8천억원,91년 9조9천억원,10월말 현재 14조5천억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90년부터 증시침체로 사채자금이 몰려든데다 은행들도 사상 최악의 고금리와 기업자금난을 틈타 CD를 마구 발행한 것이다.

사채업자는 크게 전주와 중개업자로 분류된다. 명동일대에 5백∼6백개에 달하는 사채업자 사무실은 대부분 중개업자들이다. 전주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문제의 사채업자 김기덕씨도 명동의 단순한 중개업자일 뿐이다. 전주는 수천억원을 굴리는 큰손과 수십억원대의 중치,1억원미만의 잔치로 나누어지는데 큰손은 대개 전직 고위공무원,전직군장성,전직정치인,신흥부동산재벌 등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70년대 이후 본격화된 개발과정에서 뇌물이나 차관배분 커미션,정치자금 수수과정에서의 떡고물,부동산투기 소득 등 구린돈으로 치부,중개업자들조차 자신의 상전인 전주를 「쩐주」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햇빛을 두려워하는 이들 「쩐주」들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 돈을 무기로 은행 증권 금융기관의 한 구석을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이백규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