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환율체계 “흔들”/근본적 수술론 대두/최근 2달새 벌써 3차례 재조정/“각국 경제격차 뚜렷 인위조정엔 한계”유럽공동체(EC)의 외환위기가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다.
EC 통화위원회는 22일 스페인의 페사타화와 포르투갈의 에스쿠도화에 대해 각각 6%씩 평가절하조치를 취함으로써 유럽통화제도의 기본틀인 유럽환율체계(ERM)를 재조정했다.
ERM는 EC측이 역내 통화안정을 꾀하고 경제통화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회원국간 통화의 이질성을 극복하기 우해 마련한 장치이다. 각 회원국은 이 장치에 의해 자국 통화가 하루 기준치에서 상하 2.25% 포인트 이상 움직이지 못하도록 통화관리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회원국정부는 자국 통화가 불안한 경우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통해서라도 하루 변동폭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ERM 자체를 재편,각 회원국 통화의 교환비율을 재조정하게 된다.
따라서 ERM 개편은 불가피할 경우에만 사용되는 마지막 카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EC가 지난 9월의 유럽통화 위기발생이후 세번째로 ERM 개편을 단행한 것은 그만큼 유럽환시장의 위기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특히 ERM 체계는 지난 79년 발족이후 9월 통화위기 발생전까지 13년동안 겨우 두어차례 개편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 두달동안 세차례나 재조정된 것은 ERM 체계 존립의 정당성마저 의심케하는 대목이다.
이번 ERM 개편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통화를 대상으로 부분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EC 통화위원회 회의가 아직 계속되고 있고 외환시장서는 아일랜드의 푼트화와 덴마크의 크로네화의 평가절하설이 끊이지 않고 있어 추가개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개편의 발단은 ERM 가입 통화도 아닌 스웨덴 크로나화의 투매현상으로 비롯됐다. 스웨덴 당국이 유럽단일통화(ECU)애 대해 일정한 가치를 유지시켜 오던 기존의 통화정책을 포기하자 외환시장에서 크로나가 매물로 쏟아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곧 약세통화인 페세타와 에스쿠도화의 폭락으로 이어졌고 덴마크의 크로네와 프랑스의 프랑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도 독일의 분데스방크가 인플레를 잡기위해 금리인상을 발표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약세통화의 폭락은 더욱 두드러졌다.
ERM 체계의 불완전함도 이번 사태발생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9월의 통화위기에서 영국의 파운드화와 이탈리아의 리라화가 ERM 체계에서 잠정 탈퇴했다. 이는 유럽외환시장에서 투매대상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직격탄을 맞는 꼴이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ERM 개편의 직접 원인을 제공한 것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경제상황이다. 스페인의 경제지표를 보면 바르셀로나 올림픽,세비야의 엑스포가 끝난뒤 인플레와 재정적자,실업률이 위험수위에 육박하고 있다.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6%에 이르고 실업률은 두자리 숫자를 훨씬 뛰어넘었다.
포르투갈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양국의 경제력이 다른 EC 회원국에 비해 현저히 약화된 것이다. 양국의 야당 일각에서 경제력 약화가 화폐가치의 약세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국부 유출현상이 빚어진다면서 ERM 탈퇴주장을 내놓는 것도 경제사정이 그만큼 나쁜 탓이다.
ERM 탈퇴주장은 ERM 체계의 근본적인 개편 목소리와 함께 내달로 예정된 에딘버러 EC 정상회담을 앞두고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ERM 개편주장은 하루 1조달러가 움직이는 외환시장을 ERM와 같은 70년대 체제로는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EC 각국의 경제적 격차가 뚜렷한 상황에서 인위적인 환율고정과 투기성 자본의 이동방지라는 두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EC는 오는 94년부터 EC 12개국 회원국을 모두 ERM에 가입시켜 유럽통화 통합의 2단계를 완료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관측통들은 ERM의 현실적인 문제점을 그대로 둔채 통화통합을 추진해 나가는 방법은 유럽 일부국가에서 제기되는 「두가지 속도의 유럽통합」 뿐이라며 현재의 통화위기가 이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이진희기자>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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