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 헌법개정 직·간선 7회씩/장기 집권·제도 시행착오 되풀이/후보자 4대때 13명… 8∼11대는 단독/5공 정통성 시비불구 단임공약 실천/「민주정부수립」 군개입으로 번번이 무산 “오점”13대 걸친 지난 대통령선거에 파란과 격변으로 점철된 광복이후 한국현대정치사의 굴곡을 대변하고 있다.
대통령선거는 48년 정부수립이후 총 9번의 헌법개정을 거치는 동안 직선제와 간선제를 오가는 제도상의 변화를 거쳤고 다른 한편으로론 영욕이 거듭된 당시의 정치상황을 반영했다.
선거제도의 측면에서 볼때 직선제와 간선제는 각각 7차례씩 실시됐다.
제헌헌법에서 채택된 간선제는 1대·4대·8∼12대때 실시됐고 직선제는 2∼7대·13대때 실시됐다.
특히 4대때는 4·19를 전후해 선거가 직선제와 간선제로 두번 실시되는 난맥상을 보이기도 했다.
또 미국식의 정·부통령제가 1∼4대까지 채택되어 정·부통령의 소속정당이 서로 다른 경우도 있었다.
대통령입후보자는 두차례 실시된 4대때 13명으로 가장 많았고 정치사회적 긴장도가 높았던 8∼11대때는 1명만이 단독 입후보,당선됐다.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와 달리 간선제는 선출 방법이 세번 바뀌었다.
1·4대때는 국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했고 8∼11대는 통일주체국민회의가,12대는 대통령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았다.
▷1·2공화국◁
한국 현대정치사의 서막을 연 1·2공화국은 5차례의 대선을 거치면서 비교적 다양한 정치상황을 경험했다.
이승만의 자유당정권이 정치부패와 독재에 항거한 4·19로 무너졌고 내각책임제를 도입한 민주당정권은 군부의 5·16쿠데타로 출범 1년도 채 안돼 붕괴됐다.
초대 대통령선거는 광복 3년만인 48년7월20일 제헌국회에서 대통령을 뽑는 간선제로 실시됐다.
선거결과 1백80표를 얻은 이승만이 13표 획득에 그친 김구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이승만의 자유당은 그뒤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으로 4대까지 연속 12년간 장기집권하지만 59년 4대 대선때의 3·15부정선거와 4·19혁명으로 인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만다.
3대때 야당인 민주당과 진보당은 신익의와 조봉암을 각각 대통령후보로 내세워 정권교체를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며 야당붐을 일으켰고 자유당은 「갈아봤자 별수 없다」고 맞섰다.
3·4대 선거를 눈앞에 두고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나선 신익희와 조병옥이 급서한 것도 선거결과 큰 영향을 미쳤다.
4·19이후 제2공화국 내각책임제 헌법에 따라 실시된 4대 대선은 60년8월12일 민·참의원 합동회의에서 간선제로 실시됐는데 민주당 구파의 윤보선이 재적의원 2백63명중 2백8명의 찬성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3·4공화국◁
박정희 육군소장 등 5·16 주체세력은 61년12월6일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통과된 대통령 직선제개헌안을 국민투표에 회부,찬성률 78.8%로 채택하고 제3공화국을 출범시켰다.
63년 10월16일 5대선거에서 공화당의 박정희후보는 민정당의 윤보선후보를 15만표의 근소한 차이로 이겨 청와대의 새 주인자리를 차지했다.
67년 6대선거에서 재선된 박정희대통령은 69년 3선개헌으로 장기집권의 토대를 마련했다. 71년 4월27일 7대선거에서 신민당의 김대중후보를 힘겹게 물리치고 당선된 박정희대통령은 이때부터 야당의 도전이 만만찮은 직선제보다 간선제에 호감을 갖게 된다.
당시 공화당은 「사랑방 좌담회」 등 공·사조직을 총동원해 박 대통령 지지를 집중홍보했고 박 대통령 자신도 옥외집회 연설을 통해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전력투구했다.
김영삼의원과의 당내경합을 거쳐 김대중의원을 대통령후보로 내세운 신민당은 서울 등 대도시와 호남에서 집중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개표막판 영남에서 박 후보 지지의 몰표가 나오는 바람에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이 선거는 지역 감정문제를 파생시켰다.
72년10월 유신헌법에 의해 출범한 제4공화국은 박 대통령 1인 독재체제로 일관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8·9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박대통령은 74년부터 긴급조치라는 초헌법적 통제수단을 남발,정치의 암흑시대를 초래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세력의 「독재타도투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4공화국은 79년10월26일 박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시해됨으로써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과도기적 혼란이 채 수습되기도 전인 79년12월6일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최규하대통령 권한대행을 10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80년 서울의 봄」으로 상징되는 당시 정국상황은 「12·12」 「5·17」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또다시 표류했다.
정국주도권을 장악한 신군부의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은 80년8월 통일주체국민회의 투표를 통해 1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5공화국◁
5공화국은 우리 헌정사에 있어 대통령 단임제공약을 실천하는 기록을 남겼으나 강압통치에 따른 정치적 후유증도 상당했다.
81년2월25일 실시된 12대 대통령선거는 민주당의 전두환후보가 3명의 야당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여유있게 당선됐다. 당시 야당이 「인위적」 야당이었음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전국 77개 선거구에서 실시된 대통령선거인단 투표결과 전후보 90.2%의 지지를 얻었으나 정치적 정당성 확보면에서는 집권 기간내내 문제를 안았다.
미국식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선거를 모방한 12대 대통령선거방식은 유신시대의 「체육관선거」와 크게 다른점이 없다는 비난이 제기되기도 했다.
야당후보로 나선 민한당의 유치송후보와 국민당의 김종철후보 및 민권당의 김의택후보는 각각 7.7%,1.6%,0.5%의 득표에 머물렀다.
▷6공화국◁
5공 말기의 정치사회적 혼란은 87년 6·29사태와 대통령직선제 헌법개정을 거치면서 6공화국을 탄생시켰다.
5공출범이후 정치규제의 틀속에 묶여 있던 야권의 김영삼·김대중 양김씨를 비롯,구여권의 김종필씨가 대선출마를 전제로 일찌감치 표몰이에 나섰고 민정당의 노태우총재도 6·29선언을 발판으로 「공세적」 선거전에 착수했다.
「1노3김」이 맞붙은 13대 대선은 89년10월28일 국민투표로 직선제개헌안이 통과되면서 본격 점화됐다.
16년만에 다시 실시된 직선제는 국민들에게 폭발적인 열기를 일으켰고 이런 가운데 노 후보는 「보통사람들의 시대」를,야권의 3김후보는 「개혁」과 「군정종식」을 호소했다.
그러나 야권은 양김씨의 후보단일화 실패로 분열을 자초했다.
87년12월16일 실시된 13대 대선 결과 민정당의 노 후보가 36.7%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선거기간중 불거져나온 지역감정해소를 숙제로 안았고 과반미달의 지지율은 후에 여소야대의 정국불안으로 이어졌다.<장현규·권대익기자>장현규·권대익기자>
◇노태우대통령(13대,재임기간 88·2∼93·2)
▲1932·12·4 경북 달성출생 ▲51년 경북고졸 ▲55년 육사졸(11기) ▲79년 수경사령관 ▲80년 보안사령관 ▲81년 정무제2장관 ▲82년 체육부장관,내부부장관,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85년 민정당대표 ▲88년 제13대 대통령
◇전두환대통령(제11·12대,재임기간80·9∼88·2)
▲1931.1.23 경남 합천출생 ▲51년 대구공고졸 ▲55년 육사졸(11기) ▲73년 육군준장 ▲79년 보안사령관 ▲79년 합동수사본부장 ▲80년 국보위 상임위원장,제11대 대통령 ▲81년 민정당 총재 ▲81년 제12대 대통령
◇최규하대통령(제10대,재임기간 79·10∼79·12)
▲1919·7·16 강원 원주출생 ▲41년 일본동경사범졸 ▲43년 만주국립대졸 ▲45년 서울대사대교수 ▲67년 외무부장관 ▲71년 대통령 외교담당특보 ▲79년 대통령권한대행,제10대 대통령 ▲81∼88년 국정자문회의 의장
◇박정희대통령(제5·6·7·8·9대,재임기간 63·12∼79·10)
▲1917·11·14 경북 선산출생 ▲37년 대구사범 졸 ▲만주군관학교,일 육사졸 ▲46년 육사졸(2기) ▲61년 5·16주도,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62년 대통령권한대행 겸임 ▲63년 공화당총재,제5대 대통령 ▲79·10·26별세
◇윤보선대통령(제4대,재임기간 60·8∼62·3)
▲1897·8·26 충남 아산 출생 ▲영 에든버러대 졸 ▲서울시장,상공부장관 ▲60년 4대대통령 ▲63년 민정당 창당 ▲65년 민중당창당 ▲66년 신한당창당,신민당대표최고위원 ▲70년 국민당총재 ▲79년 신민당 상임고문 ▲90·7·18 별세
◇이승만대통령(제1·2·3대,재임기간 48·7∼6·4)
▲1875·3·26 황해 평산 출생 ▲1904년 도미,독립운동 투신 ▲45년 귀국,독립촉성중앙협의회 총재 ▲48년 제헌의원,국회의장,초대 대통령 ▲60년 4·19로 하야 ▲65년 미하와이에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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