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발전한다고 한다. 짧은 눈으로 보면 역사는 발전과 후퇴,또는 정체를 거듭하지만 긴 눈으로 보면 발전을 향한 상승커브를 긋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상승커브의 속도가 빠르냐 완만하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14대 대통령선거는 87년의 13대 대선과 비교할 때 여러가지 특징이 있다. 그 하나는 그 때에 비해 지금 대선은 긴장감이 없다는 것이다. 87년 대선 때는 마음속에 싫어하는 후보와 좋아하는 후보가 편을 가르듯 분명했고,따라서 유권자의 가슴마다 설렘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여기에는 71년이후 16년만에 다시 치르는 대통령 직선에 대한 흥분과 기대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 결과 「누가 대통령이 돼도 괜찮다」는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의 28.7%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0% 가까운 응답자가 누가 대통령이 돼도 좋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우리 유권자의 마음을 오랫동안 지배해온 특정후보에 대한 비토성향,또는 2분법적 사고가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의미를 안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이번 대선이 덜 긴장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대선의 또 한가지 특징은 경제를 제외하고 과거와 같은 체제적인 쟁점이 없다는 점이다. 71년 직선 때의 독재와 반독재,87년 선거 때의 군정종식이나 문민정치,그리고 여기에 맞서는 안정논리 등과 같은 쟁점이 없어진 것이다. 양김대 반양김이 쟁점이 될 수 있지만 양김 세력이 너무 강해 쟁점으로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후보들마다 「변화」를 내세우고 있으나 후보들 자신이 신선미가 없어 호소력이 떨어지고 있다.
선거에 과거와 같은 긴장감이 없고 체제적인 쟁점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정치가 그만큼 발전했다는 증좌일 것이다. 누가 무어라해도 우리 정치의 민주화는 발전을 향한 상승곡선을 긋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대통령의 자격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과거에는 응답자가 제일 많던 「민주역량」이 정치지도력 또는 판단력 보다 훨씬 뒤처지고 있음도 우리 정치의 민주화 정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민주화 곡선이 상승커브를 보이고 있음에도 선거를 한달남짓 남겨둔 지금 절반 가까운 유권자들이 찍을만한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 대선의 심각성이 있다.
여론조사마다 수치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절반 가까운 유권자들이 마땅한 후보가 없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렇다고 이들 부동층이 모두 정치적인 냉소주의나 무관심에 빠져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표의 주권을 행사하려해도 찍을만한 특별한 후보가 없어 아직 결정을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바로 이번 대선이 뚜렷한 쟁점이 없고,따라서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찍어야 할까.
선거결과는 언제나 그 시대의 상황과 시대적 요구를 담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21세기를 앞둔 지금의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고 이 시대의 정신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20세기를 마무리하고 21세기를 준비해야 할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발전을 저해하는 독소를 제거하는 것들일 것이다. 그것은 대개 세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공정성 회복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에는 공정한 게임의 룰보다는 불공정과 편법이 판을 쳐왔고,이 때문에 발전이 저해돼온게 사실이다. 이번 대선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공명성도 공정성을 상실한데서 비롯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의 공명성은 공정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따라서 공명성을 해치는 후보에게는 절대로 표를 주어서는 안된다.
공정성과 공명성 회복에 충실한 후보에게 표를 던져야 한다.
둘째는 지역감정의 문제이다. 지역감정은 정치인에 의해 더욱 조장돼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87년 선거는 지역감정을 극도로 표출한 선거로 기록되고 있다.
다시 김대중후보는 부산에서,김영삼후보는 광주에서,노태우후보는 군산에서 달걀과 돌멩이 세례를 받는 불상사를 당했다. 이번 선거에서 또다시 이런 상황이 빚어진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역사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이다.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후보에게는 절대로 표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셋째는 세계의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들 수 있다. 지금은 변화의 시대이다.
그러한 변화를 읽지 못하고 둔감한 지도자는 우리의 발전을 가져올 수 없다.
변화에 대한 대처능력이 있는 후보에게 표를 주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한시대를 이끌어가야 할 지도자를 뽑는 이번 선거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이번 대선은 우리 정치발전의 상승속도를 한층 빠르게 한 선거로 기록돼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에 달려 있다.<편집국장 대리>편집국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