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당국은 지금 「정도 6백년」을 기념하는 사업계획을 짜고 있다. 적어도 「6백년」이라는 전통은 우리의 자부심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숫자임에 틀림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거대도시 서울의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꽉 막힌 교통에서부터 공해로 찌든 환경에 이르기까지 전통과 품위를 자랑하는 고도에 어울리지 않는 문제들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서울이라는 거대도시가 조직적인 계획과 비전에 의해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임기웅변식의 파괴·건설의 결과로 나타났다는 사실에 연유한다. 다시 말해서 합리적인 정책목표와,그것을 구현하는 도시계획이 제대로 조직되지 못한 상태에서 거대도시로 변모해 온 것이다.
12일 수도권정비심의위원회에서 통과된 몇가지 건설계획을 보고 우리는 또다시 지난날의 과오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씻기 어렵다.
이미 보도된 것처럼 이날의 심의위원회에서는 1만8천8백평의 터에 총건평 4만8천8백80여평 규모의 복합 건물을 짓는 서울종합터미널 계획 등 7건의 건설계획이 통과됐다. 서울종합터미널 계획은 막대한 교통량 유발을 고려해서,교통난 해소를 위한 「조건부승인」으로 결정됐다.
강남지역에 들어설 종합터미널도 문제지만,그보다도 우리의 관심을 모으는 것은 강북의 구도심권에 들어설 고층빌딩이다. 이날 심의위원회에서는 마포의 재개발 구역에 지상 37∼38층의 고층빌딩을 짓는 건설계획이 통과됐다.
서울의 강북지역에서 37∼38층이라면 고층이라기 보다는 「초고층」이라는 표현이 알맞는 규모다. 물론 이런 정도의 고층빌딩은 교통량 유발 등 생활공간으로서의 현실적 문제를 안고 있다. 심의위원회에서도 교통량 문제가 논의돼 지하철역과 서강대교 신설 등을 조건부로 승인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 과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서울의 공간설계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잡은 서울은 본질적으로 지나친 고층화를 자제해야 한다. 70년대까지만해도 빌딩의 고도제한이 엄격했던 것도 이런 관점에서 옳은 일이었다.
현실적으로도 세계에 유례없는 「수도집중」을 견제하겠다는 정책목표에 비추어 지나친 고층화는 견제하는게 바람직스럽다. 더구나 37∼38층이 강북지역에서 보편화 되려면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고 보면,저층건물의 바다위에 솟은 초고층은 도시계획 부재를 반영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서울 한복판에 25층짜리 서울시청을 짓겠다는 제안도 시당국이 재고해야 한다.
서울이 6백년 고도다운 품위와 전통을 지키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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