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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승복/김수종 뉴욕특파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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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승복/김수종 뉴욕특파원(기자의 눈)

입력
1992.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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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임이 그렇지만 선거에서 승자와 패자의 갈림은 얼음장 같이 비정하다. 세계 최대의 권력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였던 3일밤의 미국 대통령선거를 보면서 권력의 부침과 정치무상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나 이날밤 당락이 판명된후 승자와 패자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과정은 기자에게 형언하기 힘든 감정적 충격이었다.

친구이자 백악관 비서실장인 짐 베이커의 소개로 카메라앞에 선 조지 부시 대통령은 비감한 표정으로 『방금 클린턴 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당선을 축하하고 순조로운 권력이양을 위해 클린턴 지사의 권력이양팀과 협조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는 말로 페배를 시인했다. 그는 클린턴 지사의 선거운동을 칭찬하고 미국은 새 대통령과 함께 아메리칸 드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댄 퀘일 부통령이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얼마후 아칸소주지사 관저앞에 기쁨이 가득찬 모습으로 나타난 빌 클린턴 대통령 당선자는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축하전화를 받은 사실을 밝히면서 냉전을 종식시키고 걸프전 승리로 이끈 부시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했다.

이 광경은 2백년간 자라온 미국 민주주의의 진수였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이며,순조로운 권력이양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생명력인 것이다.

온갖 인신공격과 허구와 과장투성이의 텔레비전 광고홍수로 얼룩진 선거전을 보면서 한때 속으로 『미국도 선거는 추잡하고 우리보다 크게 나을 것도 없지 않느냐』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날 심야에 벌어진 승자와 패자의 태도를 보고는 이같은 의심이 걷히는 것을 느꼈다.

특히 패자인 부시의 태도가 마음을 흔들었다. 냉전과 걸프전을 이기고 재선을 의심치 않던 그가 조그만한 주의 지사에게 항복을 선언해야 하는 자세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부시 대통령은 앞으로 두차례나 클린턴 당선자와 어려운 자리를 같이해야 한다. 클린턴 부부를 백악관 초청해서 정권이양 회담을 가져야 하고 내년 1월20일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서 공식적인 정권이양 절차를 밟아주고 떠나야 한다.

재선임기를 마치고 권력이양을 홀가분하게 해주는 행복한 대통령보다는 부시 같이 패배한 대통령의 권력이양 과정에서 민주주의 전통은 더욱 굳어지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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