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큰 차… 신뢰도 상처/유권자·전문가 혼란 가중미 대선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여론조사 결과가 춤을 추고 있다. 29일 미국 주요신문의 1면을 장식한 여론조사 결과는 정치분석가들조차 「역사상 최악의 여론법석」이라고 평할 만큼 혼란스럽다.
CNN방송과 유에스 에이 투데이지,ABC방송의 조사는 같은 날 비슷한 방법과 비슷한 수의 조사대상자를 상대로 이루어졌는데도 그 결과는 크게 달랐다. ABC 조사에서는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조지 부시 대통령보다 7% 포인트의 우위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CNN 조사는 그 격차가 2% 포인트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두 조사는 조사대상자의 수가 각각 1천2백17명,9백명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똑같이 투표할 가능성이 큰 전국의 유권자를 상대로 한 것이다.
혼란스럽기는 같은 날 발표된 서로 다른 조사결과 뿐 아니다. 9월에서 10월중순까지 10∼15% 포인트 차이로 클린턴에게 크게 뒤져 있는 것으로 조사됐던 부시는 지난 24일 갑자기 3∼5% 포인트 차이로 격차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틀뒤인 26일 발표에서는 또다시 격차가 10% 포인트 이상 벌어졌다. 이 발표도 사흘뒤인 29일에는 다시 최고 2% 포인트 차이로 좁혀짐으로써 구문이 됐다. 어지러운 여론조사의 널뛰기였다. 『여론조사는 민주주의 절차에서 군것질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올만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여론조사 결과가 유권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느정도 인가이다.
여론조사는 정확도에 관계없이 누가 앞서 있느냐에 유권자의 관심을 쏠리게 함으로써 각 후보의 정책은 물론 인물됨됨이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 비판론자들은 지적한다. 심지어 여론조사는 지지율 1위 후보가 곧 승자인양 여론을 몰아가는 잘못을 범한다는 비난까지 제기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런 비판을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한다. 실제로 유권자들은 투표 당일 여론조사상 지지율 1위인 후보에게 표를 던지기 보다는 지지율이 뒤처지는 후보를 동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올해만해도 초반 현격한 리드를 지키던 클린턴이 투표일이 가까워오면서 고전하게 된 이유중의 하나가 이같은 강자견제,약자지원 심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느쪽의 주장이 옳으냐는 접어두더라도 현재의 여론조사 방법이 과연 타당하느냐에는 의문이 남는다. 현재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전화인터뷰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방법이 직접 면담에 비해 훨씬 빠르고 비용이 싸게 들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의 성패는 얼마나 정확한 표본을 뽑아 어떤 방법으로 분석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모든 여론조사는 3∼4%의 오차가 발생할 수 있음을 예외없이 밝히고 있지만,이는 단지 「표본선택의 오차」일 뿐이다. 조사대상자의 나이,성별,인종,교육수준,애국심,종교관 등에 따라 얼마든지 오차가 날 수 있다. 심지어 질문의 배열순서,단어사용,조사시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여론조사의 역사는 19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실제로 여론조사가 성가를 드날리기 시작한 것은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란 잡지가 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1916년부터 잇달아 5번이나 대통령 당선자를 알아맞히면서 부터다. 이 잡지는 그러나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알프 랜던이 맞붙은 1936년 선거에서 랜던의 압승을 예상했다가 루스벨트가 2개주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주를 휩쓰는 대승을 거두는 바람에 신뢰도에 치명적 상처를 입었다. 48년 선거에서도 여론조사 기관들은 해리 트루먼의 역전승으로 똑같은 수모를 당했다.
하지만 56년 이후에는,예측불허의 접전이 전개됐던 60년과 68년의 선거를 제외하고 정확히 승자를 예측했다. 68년부터는 갤럽,크로슬리,로퍼 등 기존의 전문 여론조시기관 이외에 신문과 방송이 대선 여론조사에 합세했다. 72년 선거때 3차례 밖에 실시되지 않았던 것이 58년 대선 때는 무려 2백59차례로 늘어날 정도로 여론조사는 그동안 엄청난 양적 팽창을 거듭해왔다. 올해에는 6개의 여론조사기관이 1주일에 평균 1번꼴로 전국 규모의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ABC와 유에스 에이 투데이는 10월이후 매일 결과를 내놓고 있다. 그밖에 수백개의 주와 지방언론기관이 자체 조사결과를 쏟아내놓고 있다. 후보는 후보대로 유권자는 유권자대로 여론조사의 홍수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만하다.
올해의 경우 특히 지지율 부침이 심한 것은 「페로 변수」에 원인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인 경제문제 덕택에 부시를 압도했던 클린턴이 경제전문가 페로의 등장으로 반사이익의 상당부분을 잠식당하게 된 반면,부시는 외교부문에서 꾸준한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여론의 흐름으로 미루어 앞으로 남은 3일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라고 이들은 말하고 있다.<홍희곤기자>홍희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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